햇살은 유난히 길었다.
건물의 그림자는 반듯하게 늘어졌고,
광장의 공기는 어딘가 멈춰 있는 듯했다.
도서관 앞, 벤치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눈을 감은 사람,
그들 사이에 앉은 나는
말없이 오후를 건너고 있었다.
바람은 떨어진 나뭇잎을 가볍게 들추고
머리칼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 순간,
마음보다 먼저
손끝이 떨렸다.
기억은 머릿속이 아니라
몸으로부터 돌아왔다.
장면보다 감각이 앞섰고,
뜻도 맥락도 없이
햇살과 냄새가 겹쳐 들이쳤다.
의식하지 않은 틈에,
아주 오래 전의 어떤 날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지나간 줄 알았던 것들이
이따금 그렇게 돌아왔다.
그때 나는,
안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잘 견디는 듯 보였지만
몸은 서서히 기울었고
마음은,
언제부턴가 빈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감정은 말이 되지 못했고
말은 곧 잊혀졌다.
그러나 잊힌 것이 아니었다.
피부 아래,
시간이 들지 않는 틈에
잔재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스며든 것이었다.
나는 그날들로부터
멀리 왔다고 믿었다.
실제로 많은 것이 달라졌고,
지금의 나는
그저 살아내는 데 충실하며,
더는 휘둘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그 어둠에 끌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감정의 저편 어딘가,
무언가가 아직
숨을 죽인 채 남아 있었다.
햇살이 길어질 때마다,
바람이 낡은 기억을 건드릴 때마다
그 잔류는 천천히 흔들렸다.
그래서 더는
그것들을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잊히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는 쪽이
덜 힘들었다.
가끔은,
그를 떠올린다.
눈을 감고,
버텨보려 애쓰던 사람.
어딘가에 기댈 곳 없어
그저 주저앉던 사람.
이제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를 따라,
조금 더 깊이,
그 어둠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