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눈은 마치 형체를 잃은 마을을 삼키듯 내렸다.
얼룩진 나뭇가지들이 흰 외투 속으로 스며들고,
눈발 하나하나가 세상을 덮어가는 과정은 존재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가듯 이어졌다.
나는 군복 차림으로 눈길을 걸었다.
먼발치에서 안개처럼 번지던 눈발은 마치 마음의 균열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잔잔히 퍼져 나갔다.
팬데믹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계는 무대가 내려간 극장 같았다.
중대 안에서 나는 숨소리 하나 허락되지 않은 사람처럼 버티고 있었다.
바깥 풍경이 멈춘 대신,
나 자신의 꿈과 거리와 자율이 모두 얼어붙은 듯했다.
첫 휴가라는 단어가 내 귓속을 맴돌 때,
나는 차단된 세상 너머로 빠져나갈 문을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
얼어붙은 창유리를 타고 달라붙는 눈송이들은 빛바랜 추억의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러나 집 현관문을 밀자, 시간은 반짝임을 잃었다.
힘없이 웃던 엄마의 얼굴엔
한때 무성하던 검은 머리칼은 사라지고, 앙상한 피부결만이 눈길을 붙들고 있었다.
가슴속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숨이 목젖에 걸린 채 오래도록 망설였다.
“… 유방암 3기래.”
낯선 말이 허공을 갈랐고,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입대 전 엄마가 가끔 호소하던 미묘한 통증은,
다가오는 군 입대 준비 속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불안했지만 병원에 가보란 핀잔 섞인 말로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함께 병원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하지 않은 나 자신이 엄마보다 더 원망스러웠다.
그 무렵 연인과도 서서히 멀어졌다.
깊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도 진실을 묻지 못했다.
각자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전부였던 우리는, 결국 일상을 묻는 일조차 두려워했다.
그해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온기를 잃은 가족, 말문을 잃은 사랑,
그리고 자유라 부르던 시간조차 내게서 멀어졌다.
세 축이 무너진 자리엔 차가운 공허만이 무심히 자리를 잡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