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성욕 사이, 감정의 정체를 마주하다

정서적 결핍의 또 다른 얼굴, 성욕

by Grey

마지막 연애로부터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나는 스스로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다니며,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나다워졌다.
고요함 속에 편안함이 있었고, 관계는 필수가 아닌 선택에 가까웠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고,
감당하기 벅찬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가끔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쓸쓸함과는 조금 다르고,
단순한 신체적 욕망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어딘가 허전한 감정의 울렁임.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외로움과 성욕은 정말 전혀 다른 감정일까?
혹은 서로의 얼굴을 한 채 교차하는, 같은 종류의 결핍일까?




1.인간의 세 가지 본능, 그리고 다뤄지지 않는 욕망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흔히 세 가지로 요약된다.
식욕, 수면욕, 성욕.

이 중 식욕과 수면욕은 생존과 직결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성욕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그 필요성과 작동 방식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성욕 역시 생리적 본능이자, 감정 상태를 비추는 정직한 신호다. 장기간 억제되면 감정이 무뎌지고, 자존감 저하, 무기력, 존재감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뇌는 그 억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결과 피로감, 집중력 저하, 불면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외로움과 성욕은 연결되어 있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애착, 접촉, 교감에 대한 결핍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자립이 요구되는 고립된 환경에서는, 이러한 결핍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외로움은 종종 성욕이라는 형태로 발현된다. 단절된 삶 속에서 성욕은 생존을 위한 정서적 표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욕을 느끼는 방식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다소 다르게 작동한다.

<남성: 감정적 허기와 육체적 욕망의 혼재>

남성은 대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성욕의 절정을 경험한다. 이후에도 급격한 감소 없이 욕구는 꾸준히 이어진다. 이런 성욕은 단순한 육체적 충동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남성은 정서적 허기를 성적 욕구로 오해하거나

치환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외로움의 본질이 '연결되고 싶다'는 감정임에도,

이를 포르노나 감정 없는 성적 관계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일시적인 진정일뿐, 허기의 근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여성: 정서적 유대 속에서 깨어나는 욕망>

여성은 감정적 안정감, 이해받는 느낌, 연결감에서 성욕이 깨어난다.
단순한 시각 자극보다는, 누군가와 깊이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외로움이 깊어지고 자존감이 흔들릴 때, 욕망은 오히려 억제되거나 무뎌지기도 한다. 여성의 성욕은 본능적이면서도 자기 존중감과 감정적 안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30대 초중반 이후에야 자신의 욕망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3.성욕은 ‘갈망’이 아니라 ‘신호’ 일 수 있다

우리는 성욕을 흔히 육체적 충동으로만 여기지만,

그 이면에는 세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1. 신체적 본능 (호르몬, 생리적 자극)
2. 감정적 갈망 (애착, 인정, 소속감)
3. 심리적 보상 (스트레스 해소, 정서적 위안)

즉, 성욕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라 '지금 내 감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 일 수 있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신체적 접촉이라는 가장 빠르고 강한 위안을 찾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안이 단발성일 경우, 공허함은 더욱 커질 수 있다.


4.억제보다는 순화, 부정보다는 이해

욕망을 다스린다는 것은 억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욕망이 건강하게 흐를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억제보다는 순화, 부정보다는 이해.
이것이 더 근본적인 접근이다.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성과의 우정, 스킨십 없이도 이어지는 교감은 외로움을 덜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계에 대해 마음을 닫지 않는 태도다.
“나는 언젠가 좋은 연결을 할 수 있다.”
그 열린 가능성 하나가 삶의 균형을 지켜줄 수 있다.

막연한 견딤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열림을 품은 견딤은 방향성을 가진 고요함이 된다.


5.감정을 돌보는 일상의 기술

감정의 흐름을 도와주는 방법들은 의외로 단순하다.

-글쓰기나 일기를 통해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는 일
-요가, 마사지, 바디워크처럼 따뜻한 접촉이 있는 활동
-스트레칭, 명상, 샤워처럼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루틴
-영화, 책, 음악처럼 마음이 안길 수 있는 콘텐츠들

이런 루틴들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들어준다.
견디는 삶’이 아니라, ‘돌보는 삶’으로 나아가는 길.




나는 지금,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외롭다”, “성욕이 있다”는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이 욕구는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걸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감정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건 어쩌면,
의식적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욕구를 억누르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를 자기 성찰과 성장의 재료로 삼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진실은 이렇다.

지금 느끼는 이 결핍은,
나만의 이상한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것.

이러한 성찰적 질문들이 쌓일수록,
삶은 감정뿐 아니라 인간관계, 창작,
그리고 나의 커리어 결정 방식까지도
조금씩 다른 리듬을 타기 시작다.




외로움과 성욕은, 우리가 깨어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성욕은 단지 누군가를 원하는 충동이 아니라,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내 존재는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통로다.

결국 외로움도, 성욕도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의 또 다른 언어다.
그리고 그 욕구의 실체를 억누르지 않고
의식 위로 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깨어남이 될 수 있다.

이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태도,
그 안에 삶의 방향성과 깊이를 찾아가는 열쇠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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