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장:태동

by Grey

새벽이었다.
나는 공항을 향해 바삐 걸었다.
텅 빈 길 위로 캐리어 바퀴 소리만이 따라왔다.
출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몸은 지난밤의 피로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입구를 통과했을 때, 비행기는 이미 떠나 있었다.

주방에서의 마지막 밤은 늦게까지 이어졌고,
그 사이 짐을 꾸리고, 시간을 확인하고,
겨우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어렵게 구한 표였고, 이스터 기간의 항공편은 드물고 값도 비쌌다.
하지만 낙담할 틈은 없었다.
나는 움직였고, 결국 웃돈을 주고 다음 편 비행기를 찾아 몸을 실었다.

좌석에 등을 붙이고 창을 바라보았다.
끝났다는 생각보단, 하나가 벗겨지는 감각에 가까웠다.



비행기는 짧은 하늘을 따라 북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졌다.


이륙과 함께 피어오른 회상의 파편들은,

창밖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하나둘 흩어졌다.

모든 것은 그 비행기 안에서 시작되었고,

그 하늘을 건너며 정리되어갔다.



가벼운 흔들림,
낯선 도시의 곡선,
푸른 바다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그렇게 나는, 퀸즐랜드에 도착했다.

길고 고요한 숨결처럼 퍼지는 햇빛 아래,
작은 바닷바람이 몸을 감쌌다.
야자수가 흔들렸고,
창을 타고 들어온 햇빛은 무릎 위에 닿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곳은 끝이 아니었다.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도착했다는 것을.


하루는 단순했다.
새벽이면 눈을 떴고, 그 길로 주방으로 향했다.
칼을 들고,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 섰다.

삶은 단순했고,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살아보는 법을 익혀갔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순간 스친 말투가,
오래도록 마음속 어딘가에 남을 때가 있었다.
의미 없는 눈길조차
하루의 끝자락까지 흔들림을 남기곤 했다.

그러나 서서히,
이해라는 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먼저 내 어설펐던 시절을 끌어안아야 했다.
불완전했던 시간을 덮어두지 않고,
잠깐이라도 그 곁에 머물러보는 일.

그 생각은 나를 가볍게 했다.
무언가를 부수지 않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

변화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얼굴로 오지는 않았다.
짧은 말이 긴 잔향을 남겼고,
미세한 흔들림은
보이지 않는 결을 따라 자라났다.

칭찬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속도를 재지 않고 걷는 사람처럼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자리를 향해
조금씩, 안으로 향해 가는 것.

그렇게 자라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도
그 존재로 이미 충분한 것들.

도망치던 습관도,
침묵으로 버티던 태도도,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조차
결국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마침내,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크게 바꾼 것은 없었다.
하루 끝에 짧은 문장을 남기고,
잊지 않고 보조제를 챙기고,
주변 물건들의 방향을 가만히 되돌려두는 일.

그저, 나와한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 애썼다.

감정은 지우려 하지 않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오래 지속될 수 있을 만큼 느렸다.

예전의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셌고,
지금의 나는 남아 있는 것들을 헤아렸다.

무언가를 이루어낸 내가 아니라,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나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흘렀고,
밤이면 별이 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나는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해 마냥 버티는 사람이 아,
더는 저물지 않기 위해, 삶 쪽으로 천천히 마음을 돌린 사람이었다.

지금 이 시간들
반복되는 노동,
익숙한 리듬,
사소한 변화와
느린 회복.

그 모든 것이 내가 다시 나아가기 위한
기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약은 언젠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 도약이 어디를 향하느냐보다,
무엇을 딛고 일어서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은 없었고,
삶은 여전히 느렸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 걸음,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곳이, 나라는 사람의 가장 깊은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