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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Dec 30. 2022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의 향기

알렉산드라 데이지 긴스버그(Alexandra Daisy Ginsberg)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고 Royal College of Art in London에서 아트 인터랙션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예술가다처음 그가 유명세를  것은 E. chromi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프로젝트에서는 유전적인 공정을 거친 E. coli(대장균)이 함유된 프로바이오틱 요거트를 개발해, 사람이 복용할 경우 가지고 있는 질환에 따라 대변의 색이 변하도록 했다이른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영역으로 분류되는 이 프로젝트 이후, 긴스버그는 영국 NSF EPSRC 지원을 받아 합성미학(synthetic aesthetic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 chromi: Living Colour from Bacteria, Alexandra Daisy Ginsberg, 2009.

새로운 프로젝트는 마디로 말하자면이미 멸종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꽃의 향기를 재현하는 것이다고고유전학자, 생물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꾸려진 연구팀은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멸종한 Hibiscadelphus wilderianus Rock, Orbexilum stipulatum, Leucadendron grandiflorum  가지 꽃을 선정해 남아있는 표본에서 DNA 추출해 꽃의 향기와 연관된 효소에 해당하는 염기서열을 복원했다.


Hibiscadelphus 식민지가 건설되면서 무분별한 목장 설립으로 망가진 하와이의 자연환경을 대표한다.오하이오  유역에 군집을 이루던 Orbexilum 댐이 건설되면서, Leucadendron 당시 남아공 식민지에 넓게 개간된 포도밭에 밀려 사라졌다멸종된 이유는 가지각색이나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원인이며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들꽃에 비해 '유용하다' 판단한 무언가의 가치를 앞세운 것이다.



지구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꽃들의 흔적은 이제 스위스 베른의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군데의 시설에서 만나볼  있다 공간은 우리가 흔히 아는 자연사박물관의 디오라마와 사뭇 다르다모조 털과 플라스틱을 덧붙여 인공적으로 재현해낸 동물 모형 대신 우리에 갇힌 동물의 심정을 느낄  있게끔 막다른 유리상자 안에  발로 들어가도록 짜여진 관람 동선그리고 한때 식물이 살다  흔적만이 남아있는 바위가 있다. 그리고 그 상자는 우리 곁에 잠시 머무른,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떠나보낸 향기로 가득 차 있다.


Installation view of Resurrecting the Sublime at the Biennale Internationale Design, March 2019.

기술과 자연은 일견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인간으로서는 합일을 추구해야 하는 본연의  가치 체계다긴스버그가 그랬던 것처럼인류세를 성찰하게 하는 도구로써의 생명공학은  합일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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