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을 증오했던 박사의 최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Jekyll & Hyde)>는 1990년에 처음 세상에 소개된 뮤지컬로,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계속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브로드웨이 원작을 기초하곤 있지만, 논레플리카(Non-Replica)형식으로 지킬에게 이성적인 과학자의 모습을 강조하기보다, 아버지를 향한 강한 애상과 인간성을 불어넣음으로써 한국적인 변형을 가했다. 물론 여전히 작품의 테마인 ‘이중성’이라는 키워드는 극에서 드라마틱하게 강조된다.
1885년 빅토리아 시대, 음울한 런던. 위선 어린 웃음이 가득한 곳. 유능한 청년 의사 헨리 지킬은 아버지의 정신분열증을 고치기 위해 이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강행한다. 임상실험 대상을 찾을 수 없자, 그는 자신에게 주사제를 주입하여 자신의 정신 중 ‘악’에 해당하는 하이드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실험이 진행될수록, 지킬의 몸은 하이드에 지배를 당하게 되고, 약혼녀 엠마를 비롯한 변호사 친구 어터슨과도 멀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반대했던 이사회 사람들도 한 명씩 잔인하게 살해하며, 스릴러 드라마는 계속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명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킬이 애틋하게 아버지를 바라보는 첫 장면, 혹은 극 초반 혼자 있는 장면 등은 푸른빛 또는 하얀빛으로 조명이 비춰지며, 그의 선함과 의지, 그 속의 약간의 우울함도 보여준다. 그러나 점차 광기가 지킬을 지배할수록 음산한 초록색이 그의 주변을 감돈다. 서양문화에서 녹색은 ‘악(evil)’, ‘질투(jealousy)’, ‘병(illness)’를 뜻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선 이런 녹색 조명을 이용해 지킬 박사의 정신 중 ‘악’에 해당하는 하이드의 광기와 악마적인 잔인성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낸다.
또한 우산 소품을 이용한 것도 흥미롭다. 영어권에선 우산은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동일하게 쓰는 물건으로써, ‘단일성(unity)’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살인 사건에 대한 두려움을 ‘우산’이라는 소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산을 통해 앙상블은 얼굴과 등을 가리는데, 이것은 지킬 박사가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의 위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이다. 검은 우산으로 등을 가린 조문객들이, 선한 성직자를 연기하며 밤엔 어린 여자를 탐하던 배싱스토크의 주교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그가 천국에 갔을 것이라 수군대는 장면이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지킬 박사를 사랑한 두 여인의 대비성도 의미가 깊다. 쇼걸 루시는 라틴어 'Lux' 즉 '빛'을 뜻한다. 루시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그녀는 ‘붉은빛’을 받는데, 이는 그녀가 가진 속 깊은 열정과 어둠, 그리고 유혹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와 대비를 이루는 엠마는 ‘whole’ 즉 ‘온 우주’를 뜻하며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지킬을 믿어주고 사랑하는 포용력, 여성으로서의 우주를 뜻한다. 두 사람 모두 하이드의 살인 위협을 받지만, 쇼걸 루시는 죽고 엠마는 생존한다. 엠마는 하이드의 위협에도 지킬을 부르며 자신의 원래 신념대로 굳건히 행동한다. 그러나 루시는 하이드의 유혹에 계속해서 넘어가며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메인 여성 캐릭터 두 명이 전형적인 성녀와 창녀로 이분화 되었다는 비판이 있으나, 박사의 이중적인 면모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배우들의 온 몸을 내던진 열연, 조명와 소품의 완벽히 계획된 은유적 사용 등은 관객들을 완벽하게 그 순간으로 사로잡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오디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