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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나에게 말은 건 날

by Grey Hoo

부제: '욕심'인 줄 알았던 감정의 정체와 '보배'를 만드는 삶에 대하여


​어느 늦은 오후 소파에 앉아 책을 읽겠다고 책을 펼쳐 폼을 잡아보았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한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문득 '욕심을 버려야 하나?'내 안에서 이런 질문이 솟아올랐다.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딘가 공허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지만 그 실체도 흐릿했다. 결과는 더딘 것 같아 조급했고, 원하는 만큼의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손해 보고 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나의 '삶의 설계도'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태어난 연월일시로 본다는 사주(四柱)였다. 사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기도 했고 나에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丁火)'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따뜻하고 강렬한 불꽃. ​하지만 나의 설계도에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바로 불이 녹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자 '재물'을 상징하는 쇠(金)의 기운이었다.

강력한 엔진과 최고의 연료를 갖췄지만, 목적지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빠진 자동차.


나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열정적으로 타오르지만 그 결과가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것. 나의 조급함과 결과에 대한 갈증, 손해 보기 싫어하는 마음의 뿌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 결과에 목마른 채 살아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체념하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타났다. 바로 내 '이름'이었다.
​평생 불리고 살아온 내 이름 석 자에 해답의 조각들이 숨어 있었다.

놀랍게도 나의 성씨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단단한 결과물'을 상징했고, 이름의 두 글자는 각각 '보배'와 '은혜'라는 의미를 품어,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문장처럼 알려주고 있었다.


​‘보배’. 그것은 단순히 재물이 아니었다. 타고난 원석(재능과 경험)을 인생이라는 용광로의 뜨거운 불(열정)로 녹이고, 조급함과 의심 같은 불순물을 태워낸 뒤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순수한 결정체였다. 나의 그 지독했던 열정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내 안의 원석을 '보배'로 만들기 위한 연금술의 불꽃이었던 것이다.


​‘은혜’. 그렇게 만들어낸 보배를 나를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조건 없이 나누어 주라는 의미였다. 해가 세상을 비추듯,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삶. 그것이 내 불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주가 나의 '자동차'라면, 이름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보배를 만드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것을 원석으로 삼아 배우고 느낀다.
둘째, '무엇을 위해'라는 명확한 목표로 열정의 불을 지핀다.
셋째,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조급함을 태우는 과정을 견딘다.
넷째, 마침내 얻게 된 나만의 보배를 세상과 나눈다.


​"욕심을 버려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제 "나의 열정으로 어떤 보배를 만들어갈까?"라는 설레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손해 보기 싫어하던 마음은, 나의 소중한 불꽃을 가치 있는 곳에 집중하기 위한 지혜로운 본능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도 만약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면, 가만히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의 이름 역시, 당신이 평생 찾아 헤매던 삶의 나침반이자 가장 완벽한 해답의 지도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내 이름 석 자가, 내 삶의 가장 위대한 연금술의 주문이었음을 이제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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