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항상 있는 일이긴 하지만 새삼 써본다.
어제도, 나는 동료들의 ‘정치 연극’을 보았다.
제목은 ‘폭탄 돌리기’쯤 되겠다.
옆팀에서 일이 우리 팀 한 명에게 넘어왔다.
아마 옆팀은 일이 너무 많았고 회사에서는 우리팀이 상대적으로 일이 적어보였으며, 그 중에서도 그 팀원이 가장 여유가 있어보였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도와달라”는 부탁이었지만, 사실상 그냥 그녀를 부려먹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팀 바빴을때에 그 팀이 도와줬던 기억은 없던 것 같은데 말이다.
생각보다 그 폭탄이 많아서 였을까? 그걸 혼자 처리하기 버거웠던 걸까.
결국 그녀는 나를 포함한 팀원들에게 SOS를 쳤다.
말이 도움 요청이지, 사실은 이미 마음속으로 나에게 넘기기로 정해놓은 듯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 맡을 여유는 있었다.
그래서 맡아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교묘하게 ‘공식 이메일’을 보내고, 회의처럼 소집해 분위기를 만드는 모습이라니.
그냥 정중하게 “바쁘니까 좀 부탁드린다”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가 나보다 상사도 아니면서, 왠 강압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담.
결국 내가 맡기로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럼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는데—
일을 안 맡은 다른 동료가 갑자기 나서서 일을 넘긴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바쁘면 나눠서 처리해도 돼요 ㅋ”
“혹시 부담되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 그렇게 도와주고 싶었으면 나한테 넘기는거 보고있지 말고 본인이 가져가지 그랬나.
도와줄 마음은 없으면서 도와주는 척하는 그 말투.
그곳엔 ‘협업’도 ‘팀워크’도 없었다.
오직 “내 영역은 지키고, 책임은 피하겠다”는 냉정한 생존 본능만이 번뜩였다.
사실 나는 이곳에 꽤 오래 있었다.
그래서 안다.
다들 능구렁이처럼 교묘하게 움직인다는 걸.
겉으론 웃으며 도와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책임을 슬쩍 떠넘기는 그들의 연극을.
그날 오후, 나는 그 일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쯤, 내 뒤쪽 자리에 앉은 상사가 말을 걸었다.
물론 우리는 각자 일하기 때문에 상사의 개념은 별로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이라 보면된다.
“요즘 일 잘 돼가?”
그러더니 뜬금없이,
“내가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사장님이 너한테 내 일 좀 넘기라 하시더라?”
정말일까?
아니면 자기가 먼저 그렇게 유도한 걸까?
그 분이 작정하고 일 넘긴건 한두번 일이 아니다ㅡ
그리고 그 분은 일이 많은게아니라 본인이 일을 느리게하는거 아닌가? 매일 낮에는 놀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악습을 가지고있다는걸 모두가 다 안다.
누구 말이 진짜든, 그냥 웃음이 났다.
이쯤 되면 일이 아니라 핑퐁 같다.
누가 더 자연스럽게 ‘넘길지’를 겨루는 경기.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나는,
객석에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순간, 묘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구역질나는 기분이었다.
그 연극 무대 한가운데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연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다.
나는 원래 알고 있었다.
나는 연기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진실을 말하고, 본질을 꿰뚫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향은
이 위선과 가식의 무대와는 맞지 않는다.
그들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무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오늘 나는 동료들의 연극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무대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막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