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꼭 필요한 2가지 순간

by grey수
저 경영학과 가고 싶어요.


밀레니엄을 앞둔 99년 겨울밤, 부모님과 나는 내 수능 성적표를 앞에 두고 서로의 할 말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그 당시 경영학과는 꿈의 전공이었다. 마케팅을 전공하면 컨설팅 회사에도 갈 수 있고, 회계를 하면 연봉 빵빵한 금융 회사에 가면 되고 경력이 쌓이면 CEO를 하면 되었다. 이건 거의 보장된 진로였고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수가 죽어도 싫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생활과학대학(예전 가정대)"에 지원했어야 했고 패션에 1도 재능이 없는 나는 재미없는 의류학도가 되었다.


입학 후 경영학과를 부전공하고 싶었지만, 학과 공부조차도 겨우 따라가는 출석률과 성적은 결국 경영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을 말해 주었다. 똘똘했던 국문학과 친구는 경영대에 전과에 성공하여 나에게 겸손한 한턱을 냈다. 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경영학도들은 역시나 취업도 잘 되었다. 은행이며 유통업계며 몇 군데 합격해서 고민하는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99년 겨울밤을 떠올렸다. 경영학과를 갔어야 하는데...


절대 문과는 안된다 했어.


나는 준 대치동에 살다 보니, 주변에 열성적인 학부모가 그득하다. 물론 나도 초반에는 그들과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준을 맞춰 보았지만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건 우리 애들이라, 서로 해로운 짓 안 하기로 했다. 만나서 애들 얘기 안 하고 싶어서 만남 자체를 줄였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까지 안 만나는 건 아쉬워서 가끔 본다. 이 집은 아들이 고2 올라가서 선택과목을 정해야 하는데, 아들이 대학 가서 법대나 정치학과를 전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우선 이과로 공부하다 보면 교차지원해서 문과로도 갈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는 말이었다. 궁금해서 정말 이과 공부 시키고 문과 보낼 수 있냐고 물으니, 택도 없다. 우선 아이가 하다 보면 결국 지원할 때 이과를 지원할 수밖에 없으니 우선 설득하는 것이라 한다.


눈치가 빠르고 언변이 탁월한 아이는, 아직 부모를 설득할 나이는 안되나 보다. 결국 이과 선택과목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승률이 높은 전략을 선택하는 건 당연히 맞는 방법이지만, 부모 둘 다 문과 출신이다 보니 이과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정적인 직업으로 이과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얼마 전에는 명문고 다니는 아는 집 아들이 서울대 공대와 지방대 의대에 합격했는데, 공대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2년 전만 해도 고민할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을 텐데, 깊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안정된 직업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실 잘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더더 중요해 졌다.




나는 명리학이라는 빅데이터 학문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두 번은 꼭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한 번은 대학 전공 정할 때, 나머지는 결혼 궁합이다. 사주팔자 8글자 안에는 " 사회에서의 내 모습, 나의 역할"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배우자와의 관계도 알 수가 있다. 물론 똑같은 기침으로 병원에 갔을 때 치료방법은 각자에게 다르듯이, 사주도 직업을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명리학자가 모르기 때문에 직업을 꼭 집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위험하다. 그렇다면 사주 보러 가지 말라는 말인가?


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보라 한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길을 내 머리로 이해해서 잘 가면 좋지만, 그 해석이 어려울 때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제쳐 보자는 것이다. 아이의 전공을 물어보러 갔을 때는, 고민하지 말아야 할 전공을 알려 달라는 게 안전하다. 그 외의 전공에서 아이가 살아온 길에 맞는 선택을 하면, 기질과 맞는 선택을 할 승률을 좀 높일 수 있다 생각한다. 대학 전공이 어느 정도 아이의 가는 길과 맞게 되면, 그 이후는 자녀의 몫이다. 부모는 다만 욕심을 좀 내서 가지 말아야 할 길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궁합은 어떨까? 나는 앞서 글에서도 말했었지만, 3개월 연애하고 결혼했다. 제대로 사주를 본 게 결혼 후였으니, 참 도박 같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10년을 연애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위험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가 결혼할 때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결혼은 2명이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결혼은 4명이 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해 부정도 못한다. 부부 2명과, 각자의 환경에서 딸려온 집안문화 그리고 부모님. 이런 서로 다른 조합들이 어우러져야 결혼이 유효할 수 있다. 문제는 결혼할 상대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나를 속여서 알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배우자는 그의 문화가 정답이라 믿고 커왔기에, 나의 정답이 그에게는 오답이 되는 것 뿐이다. 오답이 난무한 상대와 죽을 때까지 살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MBTI 정도의 참고는 참 용기 있는 의사결정이다. 심지어 그 MBTI는 상대가 본인 것을 체크해 보고 말하는 정보이니, 정보의 검증은 무의미하다. 궁합도 진로와 마찬가지로, 맞는 사람을 찍어 주기는 어렵다. 다만, 서로 만났을 때 상처만 되는 관계는 알려줄 수는 있다. 그건 서로에게 피해야 할 지혜와 명분이 필요한 순간이다.



갑진년이 가고 을사년이 온다. 물론 음력으로 1월 1일이 되어야 하지만, 이미 12월부터 기운이 들어온다고 배웠다. 우리가 수많은 정보를 취할 때 기준 없이 듣는 순간, 그리고 그 결괏값을 맹신했을 때 인생은 참 위험한 고비를 맞이한다. 솔직히 사기당하는 상황과 앞뒤가 다를 게 없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지속적으로 미래를 점쳐보고 싶고 믿어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쩌나. 원래 인생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을. 아니려 발버둥 칠 때 더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알고, 또다시 우리는 좀 외롭고 겁나도 버티면 된다.


새해 사주를 보더라도 잘 되는 것을 묻기보다는, 조심해야 할 것을 묻고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빅데이터 시대에 살아가는 합리적인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득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여성분의 사례가 생각이 났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하나의 날짜에 맞는 사주를 찍어 준 그 나쁜 사람은, 한 사람의 인생에 무슨 업보를 지었는지 깨닫고 반성할 수 있는 행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내 인생을 가장 고민하고 잘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을사년에도 믿어주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