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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y수 Nov 05. 2024

제발 나를 좀 부러워해 줄래

도와줄 수 있어? 넘 좋지~~고마워!!


해외에 1년 살기를 시작한 그녀는 브런치에 글을 적고 싶어 한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로 어설픈 가이드를 해주기로 약속 잡고, 우리의 인연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된다.




대학교 과 선배이자 첫 회사 입사 동기. 두 개의 중요 그룹이 겹칠 정도니, 깊은 인연이다. 나보다 2살 많지만 언제나 10살 많은 사람처럼 가득하게 똑똑하다. 회사에서도 일 잘하기로 유명하여, 가장 힘든 부서에 끌려가 에너지 방전될 때까지 근무하다 이직을 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부작용도 컸지만, 덕분에 그녀는 이직한 회사에서 최연소 임원을 달았다. 늦은 출산을 한 그녀가 육아 관련해서 물어오면, 그녀가 만족할 만한 논리를 대어주며 1년에 한 번 정도 통화 하는 사이가 된 지 오래다. 어느 날 인스타에 육아휴직을 하고 동남아 어디론가 떠난 그녀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쯤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아마 내가 글 쓰는 것을 알고 있기에 궁금했던 모양이다.


글 쓰는 게 쉽지 않네.
블로그도 해보지만 단순 정보성 글로 빠져버리고.
책을 내고 싶은데, 일 년 살기 스토리로 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것 같았다. 그녀스러웠다. 가서 만난 해외 각국의 가족들의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고, 인터뷰도 해서 유튜브를 찍고 싶어 했다. 어느 유명한 아나운서가 갑자기 일 그만두고 아이와 떠난 이야기의 책 링크를 보내며, 원래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닌데 짧은 기간에 책을 냈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소개한다. 이틀에 한번 꼴로 올리는 인스타 계정을 보면 역시나 그녀는 바쁘다. 그곳에서 운전 면허증도 따고 아이가 얼마나 만족해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그녀의 시선이 넘치게 담겨 있다. 그녀의 1년 살기는 예상컨대 경영계획 같은 연간 목표와 세부 계획들이 잔뜩 세워져 있을 것 같다. 휴직이 아니라 발령이 나서 근무하러 간 사람처럼, 무언가 어떤 것도 휴직하지 않고 24시간 근무 중이다.


 사주에 '편관'을 갖고 있는 그녀는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가슴깊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머리로 예상할 수는 있다. 글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유명인들이 책을 내는 정도의 목표는 해야 한다고 다짐 중일 것이다. 유튜브를 찍어 본 적은 없지만, 글로벌한 인터뷰를 올려서 큰 채널을 운영하고 회사월급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목표를 세웠을 것이다. 편관이라는 글자는 세상을 지배하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속삭이는 역할이다. 스스로 세상을 통제하고 앞서 가지 못하면, 삶이 통째로 지는 것이고 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번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세상을 장악하는 멋있는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해야 일을 시작할 맛이 날 것이다. 특히나 다른 위치에도 관이 2개나 단단하게 있는 구조라서, 남들이 알아주고 평가해 주는 속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녀이다. 그만큼 남들의 시선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고, 그녀 행복의 생산자는 그녀가 아니라 남들인 것이다. 생산자들이 만들어 주지 않는 행복은, 소비할 수 없다. 




 문제는 세상의 시선이 따뜻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녀 스스로 느끼는 세상은 항상 벅찬 목표를 제시하고, 칭찬에 인색할 것이다. 그 목표를 죽도록 해내도 또 다른 목표를 쓱 내밀뿐이다. 그런 삶 속에서 편안함을 찾고 불안감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그런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세상의 시선에 인정받기 위해서 큰 발버둥 중이다. 얼마나 완벽하게 떠날 준비를 했는지, 얼마나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이렇게 떠난 것이 당신들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라는 느낌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불안 가득한 그 사진들과 멘트들은, 그녀를 덜 불안하게 만들어 주나 보다.  


우선 글을 쓰다 보면
방향이 잡힐 거야.



 이런 나의 제안이 그녀는 마음에 안 든다. 언제 한 스텝씩 밟고 올라가서 책을 내겠냐는 반응이다. 그녀 마음속에서는 초단위 시계가 딸깍거리며 남은 육아 휴직 기간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기에, 그 시계가 멈추는 순간까지 세상을 향해 책을 내밀어야 하는 단단한 계획이 차있다. 그녀의 사주명식을 보면 세상이 공격하기 전에 살기 위해 먼저 공격하겠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편관은 공격에 대비하고 상처가 두려워하는 준비들이, 결국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상처까지 스스로 만들어 낸다.



 사실 인간관계에서도 불필요한 감정을 전달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때는 어려울 수 있으니 해보라고 권해 보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하나같이 불안함만 준다. 그럼 말해주는 내 입장에서는 다 느낄 수 있다. 그녀가 나를 초라하고 미흡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 또한 편관의 활약상이다. 본인 스스로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남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불필요한 본인의 시각은 타인에게 쉽게 전달되며, 그녀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뜻 밝아 보이지만 듣고 보면 상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편관인 경우가 많다. 그녀는 글을 써서 본인보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그들의 부족한 모습을 평가하고 싶어 하지만, 이 어리석은 착시를 깨지 못하면 힘들고 아프겠다 싶어 안쓰럽다.   


제발 나를 좀 부러워해 줄래?



 인정받고 싶은 그녀는 세상이 본인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봐 많이 두렵다. 이렇게 큰 마음먹고 떠난 일 년 살기가 부러움을 못 받고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렵다. 남들의 인정을 못 받는 일은, 그녀에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함께 간 딸의 애교 섞인 모습과 즐거워하는 표정만으로는 불안감을 줄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불안감은 그녀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었고, 좋은 결과물을 낼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런 에너지가 그녀를 최연소 임원까지 달게 한 원동력이었으니, 신은 그녀에게 불안을 감당할만한 능력은 함께 주신 것이다.


 그녀는 잠이 쉽게 안 들었나 보다. 늦은 밤에 또 다른 해외살기 엄마의 책링크를 보내왔다. 사실 나는 그녀가 책을 내더라도, 불안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애써서 낸 책이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가 돼서 그녀에게 강연의뢰가 쏟아지지 않는 한, 하찮은 책이라고 스스로 평가할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본다.




 세상의 시선이라는 것은, 사실 그녀 스스로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오류 가득함으로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까.


 

착시를 깨닫기만 해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을
신이 함께 주심을, 오늘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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