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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Nov 22. 2023

쉬운 글 , 우리가인생이라부르는것들

정재찬 작품

   누구는 성취하는 삶을 살고, 누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누군가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때로는 루저로 보이는 삶을 살기도 한다. 똑같은 삶은 없어 제각각의 삶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정재찬은 “정답이 있다거나 고통이 전혀 없는 인생은 재미와 가치가 없는지도 모른다”라고 쓰고 있다. ‘양변을 여의라’라는 육조단경의 말씀만으로 살아가기도 벅찬 것이 인생이 아닌가.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과정과 결과를 일곱 가지로 나누어 그에 잘 어울리는 시를 읊어가며 인생을 성찰한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다. 차례를 훑어보다가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 ’상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먼저 눈에 들어와 읽는다.


   나쁜 일은 깡패처럼 몰려다닌다는 설상가상을 풀어쓴 문장이고,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마의 크기는 온기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누군가가 내 이마를 짚어본 기억과 내가 누군가의 이마를 짚어본 기억이 없음에 온기를 나누지 못한 삶을 깨닫는다. The color of Snow, The Taste of Tears로 표현된, 밥벌이의 대가를 소환하는 이야기에 표현의 힘을 본다.


   아흔을 넘긴 엄니의 발톱을 깎아 드릴 때의 느낌을 저자도 공유하고 있다. 어릴 땐 돌봄을 받고, 성장해선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귀를 열고 입은 닫는 것이 건강에 좋으며, 꼰대의 의미를 오만과 올드의 합성어로 본다. 탐식의 즐거움과 절식의 미덕 사이에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며 건강을 이야기한다. 에세이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문장을 발견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들 밑에서 일하던 수많은 요리사가 혁명으로 인해 길거리로 쫓겨나와 개업하기 시작하면서 레스토랑이 유행(p.118)하게 된 거란다. 근대사회 대중문화의 풍요는 평등도 가져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이 대신 보낸 존재가 엄마란 표현은 이 책에도 나온다. 건강과 관련지어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고, 살아갈 나에 대한 긍정으로 풀어본다. 인생은 클로즈 업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롱 숏으로 보면 희극이다.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선재의 붕어빵이란 에피소드와 예수의 기적인 ‘오병이어’를 연결해 배움을 이야기한다. 관찰은 세계의 숨겨진 질서와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이자 삶의 경이를 일깨우는 힘이다. 힘들수록 즐거울 수 있는 것이 工夫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조선 문장가 유한준의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퍼뜨린 유홍준과 같은 맥락이다. 창의성이란 ‘준비된 우연’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며, 하브루타를 한두 번 강의로 전달하고 익히려는 교직 사회의 시도는 헛수고 임을 확신한다. 창의성은 지식을 토대로 발휘될 수 있다. 스캠퍼, 시냅틱스 기법이니 육색 사고 모자 기법, 자유분방, 양산, 비판금지, 결합과 개선이란 브레인스토밍, PMI는 방법일 뿐이다. 어른, 이제 진짜 공부할 때다. 장자의 양생주편을 들어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를 노력하라는 해석과 위태롭다는 해석을 병치해 두고 있다.


   관계에 관하여,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라며 서로 안아주자 말한다. SNS의 공감은 순기능이다. 성찰은 자기 변혁의 조건이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인지해야 한다. 페르소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하기 위한 마스크, 삶의 기준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지난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은 끊을 수 없는 거다. 정말 가치 있게 써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2023.3.2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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