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좋아하니 이런 책에 관심을 둔다. 서평을 쓰는 까닭은 나를 위해서이고 공유하여 다른 이의 책 읽기 소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는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책을 읽지 않아도 서평 혹은 독서노트만 읽어도 내용과 가치를 되새김할 수 있고, 이 책과 저 책이 연결되어 아이디어가 결합하는 기쁨이 나를 정체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글을 쓸 때 쏟아지는 단어와 문장들을 주워 담기 쉽다. 다른 이의 책 읽기 소재가 되고 싶다는 말은 시류, 유행, 광고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길 바라고 이를 어느 독자가 받아들인 다면 나의 책 읽기의 끝이 다른 이의 책 읽기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책은 내가 책에 관한 글을 쓰는 방향성을 갖게 한다. 두 번째 책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향과 형식을 풍성하게 하려는 뜻이다. 첫째 책으로 방향을 잡아 글을 쓰는 일은 잘한 선택임을 확인한다. 두 번째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끝에 두 책을 비교한다.
두 번째 책은 『서평가의 독서법』이다. 이미 송숙희의 『읽고 생각하고 쓰다』와 모티머 J. 애들러와 찰스 반도렌이 지은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등을 통해 독서법에 관한 나만의 태도가 있기에 독서법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평가로 이름이 났다는 광고에 끌려 얼마나 잘 썼느냐는 의구심과 배울 게 있다면 취하리라는 생각으로 책을 편다.
미치코 가쿠다니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99개 서평 중 10%인 10권을 읽은 독자가 평가하는 시도가 무리할 수 있지만, 부끄러울 것은 없다. 미국 사회에서 읽히는 책 중 10%를 한글로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99개 서평이 다룬 책들의 중 내용 중 기억하고 싶고 찾아 읽고 싶은 내용과 책을 옮겨둔다.
『아메리카나』에 관한 첫 서평은 나이지리아 출신 이페멜루가 미국 생활에서 흑인으로서 성공했으나 고국에서 사랑했던 오빈제를 잊지 못하는 성장 이야기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다정한 입맞춤>을 연상하게 하나 연상의 오류임을 깨닫는다. 정체성이란 것이 과거보다 덜 중요한 세계에서 살면서 성장한 곳이 살아가는 곳과 어떻게 우리를 만들어가는가를 보여준다.
『세상의 빛: 회고록』은 하이쿠를 공유하는 노트에 쓰며 살았던 남편에게 보내는 연서다.
『무하마드 알리를 생각하다』는 여러 권의 책에서 알리의 성장과 영광, 고난과 변화를 그린다.
『이미지와 환상』은 어떻게 환상이 지식을 대신하고 광고가 내용물을 대체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페스트』에서 개인의 책임감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과 결합하는 과정을 본다. 『형제여, 나는 죽어가네』는 한 권의 책에서 아이티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다룬 서평이다. 돈 드릴로의 『언더월드』를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소설”이라 하여 검색하나 미출간 상태다.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직 고별 연설(1796)』에서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는 일의 한계, 민주주의에 닥칠 위험으로 “교활하고 야심 차며 파렴치한 인물들”이 부상하고, “국민의 권력들 전복”해 부당한 지배권을 쥘 수 있고, “방심할 수 없는 외세의 간계”와 “야심 차거나 부패하거나 현혹된 시민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정치하려는 자와 하는 자가 읽어야 할 문서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가 개척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쓰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낸다. 윌리엄 포크너의 “콜라주 방식의 서사는 기억의 주관성, 인식의 한계, 다른 개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이아를 다시 펼치게 한다. 왜 중요한 원전인가에 관하여, “자부심이 불러오는 위험, 가변성을 가진 정체성,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줄다리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같은 영원한 주제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의 역사-경제적 접근』에서 다룬 오디세이아는 지배층의 자유와 피지배층의 노동으로 풀어놓았는데.
윌리엄 스트렁크 주니어가 말하는 문체의 요소들은 좋은 아이디어, 반전, 적절한 말, 불필요한 부사와 헤세 부리는 단에 베내기다. 작가의 일이란 “아이디어는 찾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나타났을 때 알아보고 결합하며, 상황을 만들고 이겨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는 훈련이 필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미국 백인의 머릿속에 ‘명백한 사명설’이 있다. 미국의 서부 영토 확장과 이후 해외에서의 모험(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브런치 북 『그 책, 좋아』에서 ‘미국의 총기 문화’로 다루었다.
셰익스피어가 작가나 사상가의 글에 영향을 미친 요인 서술했기에 옮겨 본다.
첫째, 작품은 ‘흥미롭고 다층적이고 복잡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언어가 단순’하여 읽기 쉽다.
둘째, 셰익스피어의 극은 ‘인간 조건의 본질적 양상을 규정’한다.
셋째, ‘극이 자기 경험을 작품에 적용하는 배우들에 의해 완성되고 계속해서 재창조’된다.
넷째, 극이 묘사하는 ‘변화와 상실의 세계는 현대의 독자에게도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풀어 말하면 민주주의가 점점 후퇴하고 독재정치가 부상하는 분위기다. 이는 저자 미치코 가쿠타니의 생각이다.
이밖에 관용어가 된 표현의 기원이 셰익스피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 ‘멋진 신세계’, ‘소음과 분노’.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내용은 없어도(익히 알고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일 거다) 훌륭한 서평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알렉시 토크빌의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사적으로 즐거움에 탐닉하는 미국인의 경향성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약화해 부드러운 독재의 길을 열 것’, ‘자치의 습관을 포기하면 통치자를 제대로 선택할 수 없음’을 우려한다. “온갖 사기꾼”에 민주주의가 쉽게 영향받을 수 있음을 염려한다. 병장 월급을 200만 원 주겠다는 미친 포퓰리즘으로 연결한다. 미국은 인디언 살해와 전멸, 잔악한 노예제를 운용한 원죄가 있다. 그의 선견지명은 21세기에 어긋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힘과 분별력을 자유로이 발휘하는 미국과 사회의 권위가 온통 통치자에게 집중되는 러시아”가 세계의 두 절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예측한다.
두 책을 비교하면 첫 번째 책은 철학에 기반을 둔 서평과 서평 쓰는 법을 다루나 두 번째 책의 바탕에 철학을 찾기는 어렵고, 서평 쓰는 법을 다루지 않고 독자가 서평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기를 바란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책은 소설에 치우친 서평이다. 이에 비해 첫째 책은 비문학에 치우쳐 있다. 두 번째 책은 이민자와 2세대 작가들의 책을 많이 다루고 미국 사회에서 읽히는 책이다. 첫째 책은 역사적 의미에 초점을 두어 번역된 책 중에서 선택하여 무게가 있다. 두 번째 책이 한 작가의 작품을 묶어나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개 묶어 소개한다. 이를 첫째 책에서는 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서 쓰는 주제 서평,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이라 이름 지었다.
두 번째 책의 저자는 『전체주의의 기원』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명확하게 기록하고,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적었다.
서평의 내용과 방향과 형식을 익히려는 독서의 목적을 잊고 좋은 책, 읽을 책 메모에 바쁜 책 읽기였으며, 최고의 평가는 마지막 문단이 짧게는 한 문장에서 길어도 네 문장으로 결론을 드러낸다. 내가 받아들일 형식이다.
키르케고르가 정의한 “가장 불행한 인간”은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희망 속에 사는 사람이다.’ 그대가 글로 남기지 않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다.
P.S. 1은 강유원의 책이고 2는 미치코 가타쿠니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