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고, 몇 권 되지 않는 과학에 관한 독서 방향을 점검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과학 공식이라고는 한 줄도 없는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의 수준을 저평가하는 뜻이 결코 아니다. 『부분과 전체』가 주는 의미는 과학보다 ‘대화와 토론’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읽으면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로부터 과학이 시작되었다. 『생각의 역사』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그리스도교의 발흥 이래로 모든 것을 능가한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조차 내적 변동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부터 144년 뒤 1687년 뉴턴이 「프린키피아」(매거진에 서평)를 펴낼 때까지 과학혁명은 자연의 이해를 근본적이고 항구적으로 변화시켰다. 태양 중심적 천체관, 만유인력의 발견, 빛, 진공, 신체, 미생물의 이해에서 중요한 진보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오는 과학혁명의 영웅이며, 혁명의 결과 중 하나는 하늘이 땅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린키피아」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과학 문헌”으로 간주한다. 물질의 질량과 밀도, 관성이라 부르는 ‘내재적인 힘’을 찾아냈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1231년 “인간 인체의 해부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의사가 될 수 없다”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곧 덕이라고 여겼지만, 베이컨은 지식이 곧 권력이라 여겼다. 17세기말에 이르러서야 실험의 중요성이 인정되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1687년 이후의 연구를 읽고 평가할 수 있다. 1543년 이전의 문헌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특별하게 어려운 과학적 이론을 풀러 놓지 않고도 문학적 표현으로 환경오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는 과학사를 연구한 쿤이 ‘정상과학’을 설명하며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사용한 과정과 과학 분야 말고도 사회학, 디자인 분야, 인공지능 분야에서까지 퍼진 개념의 발전과정을 설명한다. 패러다임은 일반적인 의미로 쓸 때는 세계관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패러다임(paradigm)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개념화했다.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친다. 그런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데서 발생하다. 그리고 기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규칙을 찾아 나서게 한다(예 :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탄생-당시 완벽에 가까웠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행성의 위치와 세차운동에서 당시 얻어진 가장 훌륭한 관측치와 잘 들어맞지 않았다.) 『What Is Life?』은 과학 중에서 생물학에 가장 가깝다고 할 이 책은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아내였던 린 마굴리스와 그의 아들 도리언 세이건이 지은 것이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렇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머리글에서 진화 생물학자인 닐스 엘드리지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모르는 단어, 개념, 문장이 너무 많다. 그저 글자를 읽는 수준에서 많은 페이지를 넘겼다. 『이기적 유전자』는 ‘40억 년 전 자기 복제의 능력을 갖춘 유전자가 진화하여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되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으며 이를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이유라라는 것이다. 유전자는 본래 이기적인데 이는 유전자 자체를 보존하려는 목적 때문이라 한다. 이타적 행동조차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적 진화라는 개념(밈 meme)을 만들어냈다.’ 유전자의 눈으로 진화론을 설명한다.
『과학과 사회 운동 사이에서』 저자 존 벡위드는 하버드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전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바지한 바가 있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자전적 이야기다. 과학, 좁게는 유전학 분야 연구가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세 가지를 새롭게 배운다. 인종 간 우열을 나치가 오용했다는 상식의 오류가 하나다. 최근 진화심리학이나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란 꽤 큰 분량의 연구도 사회생물학에서 유래한 것이고, 뿌리가 우생학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능을 연구한 젠슨이 미친 부정적 영향은 교육 분야에도 아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상처를 남긴 거다. 나치가 악용한 우생학은 미국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진화심리학과 스티븐 핑거의 노력도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한다. IQ에 관한 젠슨의 연구는 역사에 묻힐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 과학 고전』은 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과학의 대중화 저변 확대를 위해 내놓은 책이다. 학창 시절 공식을 외워 답을 찾던 과학에서 흥미를 잃은 사람에게 “과학 이론은 과학자의 인생관이나 학문적 경향은 물론 사회·역사·정치·문화가 긴밀히 상호작용하여 비롯되는 총체적 산물이기 때문”에 과학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라 안내한다.
『인문학 스터디』 는 과학사에서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기독교 사상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꼭 읽으라 한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종교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조언과 내가 미국 대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양 수준임을 확인한다. 서양 중심의 교육과정이므로 동양 고전, 동양의 인문학을 생각한다면 더욱 초라하다. 그러나 ‘하나의 좌표를 찾은 것이다’라고 자위하며 앞으로의 독서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받는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명예는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에 주어진 것이며, 비록 우리 세대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들리겠으나 자연과학의 지위가 크게 올라간 것은 인문과학과의 연결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일이라 평가한다. (p.352)
『부분과 전체』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쓴 자전적 이야기다. 원자물리학을 평생 연구하며 과학과 철학, 정치, 종교, 윤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만 파고들어 편협한 사고를 한다는 세간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트린다. 오히려 고등학생 나이에 어떻게 수준 높은 대화를 할 수 있는가 감탄한다. 과학 공식이라고는 한 줄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뉴턴 역학, 양자역학, 일반 상대성 이론, 특수상대성 이론, 원자로 만들어 활용하기 등 20세기 최첨단의 과학적 성과를 교수, 동료, 후배들과 철학에 기초한 대화를 통해 의문을 해결해 간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라는 혼돈 속에서 여러 방면에서 권유가 있었음에도 미국으로의 이민을 고려하지 않고 독일에 남아 독일의 미래를 생각하는 결단은 과학에 관한 열정의 폭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뒤표지에 서울대 권장도서니, 자사고 특목고 추천도서라는 출판사 광고는 부분과 전체를 기술하는 ‘대화와 토론’에 주목한 것이라 평가한다. 교사의 주입식, 학생의 암죽식 교육에 찌든 학생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줄 만한 책이다.
이제는 과학의 영역이 뇌와 마음까지 영역을 넓힌다. 『마음의 발달』은 마음이란 무엇이고, 마음은 어떻게 발달하는가를 뇌의 구조와 인간관계 경험이 마음을 만든다는 것을 여러 과학 분야 연구를 종합해 탐구한다. 마음이 부분적으로 뇌의 물질에서 나오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