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이 시작되고 질병은 인류와 함께 있어 왔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됨에 따라 전염병으로 확대되었다. 질병은 ‘거리 조락 함수(공간에서 어떤 현상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크기나 밀도가 줄어드는 경향성)’에 따라 제한된 범위에서 확산하나 ‘시공간 압축(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공간이 줄어들고 시간이 짧아진 현상)’에 따라 확산 속도는 빠르고 전파의 범위가 넓어졌다. 역사 이래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쳐 제국을 몰락하게 한 질병부터 동양과 서양 사이,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에 의해 전파된 전염병을 다룬다.
인류의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p.14~20)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 농경이 시작된 시기까지를 정리해 놓았다. 「전염병이 휩쓴 세계사」처럼 쉽고 간략하고 정확하게 기술한 것을 보지 못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키워드로 서술된 문장들은 기후학, 지구과학, 역사학, 의학사, 지리학이 융합된 문장으로 논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당뇨병과 관절염, 충치는 채집과 수렵의 시대에는 없었다. 정착 농경의 토대인 야생식물 작물화 이래 노동량 증가와 활발한 인구이동은 전염병 확산을 가져왔다. 실크로드, 바닷길, 철도를 따라, 책에서 특별한 언급은 없어도 항공 교통의 발달은 시대마다 전염병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전쟁도 전염병을 확산시킨 주요 기제다.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천연두는 중앙아시아의 훈족에 아프로-유라시아로 확산한 것이다. 로마, 이집트, 인도, 중국의 역사 기록을 통해 실크로드를 따라 도시와 도시로 천연두가 전파되었다고 판단한다. 바닷길은 페스트의 주요 전파 경로로 동로마 제국의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 몽골제국은 의도치 않게 페스트를 확산시켰고 14세기 흑사병이란 이름으로 유럽을 휩쓸어버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전파한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티푸스, 디프테리아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90% 이상 멸종시키다시피 했다. 유럽인이 강조하는 무기나 기독교의 힘 때문이 아니다. 사탕수수는 뉴기니에서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메소아메리카와 유럽이 만든 식민지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게 했다. 아일랜드 역사와 밀접한 감자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3대 식량 작물인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매독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유럽에도 매독이 존재했다는 반론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아메리카 노예로 팔리면서 황열병이란 풍토병이 확산하였음과 기타 소소한 읽을거리가 많다. 학생 수준에서 유익한 내용이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으로 콜레라, 결핵, 장티푸스가 출현했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도시에 집중적으로 퍼진 콜레라가 존 스노에 의해 물에 의한 전염임을 밝혀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준 질병은 결핵으로 미국 인종차별정책과 빈부 격차를 들어내는 질병으로 기술하였다.
전쟁과 전염병의 관계를 풀어보면, 미국 남북전쟁 당시 전투 중 사망자의 세 배나 세균성 이질에 의해 사망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1918년 인플루엔자’가 급속히 퍼졌고, 미국은 당시 거즈로 만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전쟁 신경증인 ‘셸 쇼크’는 원폭투하,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풍토병인 말라리아는 치료제인 키니네가 아프리카 식민화를 가속했다. 치명적인 풍토병이었던 말라리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마음대로 나눠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교통 발달이 가져온 시공간 압축은 전염병의 확산 속도와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코로나 19의 확산을 경험하며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의학의 발달을 지원하는 글로벌하고 탄탄한 체계가 필요하다. 빌 게이츠의 의견을 믿어야 한다. 팬데믹의 영향은 제국, 정권의 존망과 연결된다. 한국 의료보험체계가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우수하지만, 쿠바의 의료 시스템이 부럽기도 하다.
전염병이란 소재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살펴볼 수 있게 했고, 쉽고도 유익하게 쓴 글이라 중고등학생에게 최적이겠다. 어른들도 세계사와 전염병을 버무려 이해하기에 충분한 교양서다. 확산과 관련된 다른 책들로 흥미를 이어가면 좋을 듯하다. ‘생각의 나무’에서 내놓은 「향료 전쟁」 정도면 범위는 좁히되 깊이는 더해 계열상 있는 독서가 되리라.
P.S. 2022.2.2.(일) 쓴 글을 수정보완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