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며 조선 선비가 누리던 사랑방 문화를 느끼고 싶다고 썼다. 이덕무가 햇볕을 따라 책상 위치를 바꾸는 빈한(貧寒)함은 빼고, 서적을 쌓아둔 사랑방의 묵향, 벗과 나누는 시담(詩談), 차담(茶啖)……. 아파트에서 사는 삶에서 불가능하기에 글 제목에 ZOOM-IN 하여 집에서 사랑방을 거쳐 책꽂이를 살펴보는 기분으로 몇 자 적는다.
『책꽂이 투쟁기』가 내 집에 오기까지 경로를 되짚어 본다.
책을 읽고 글을 써 책으로 묶는다는 말로 분칠을 했어도 다 가릴 수 없다. 직장이 없이 살기 시작한 지 3년이 지나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댓꿀쇼를 본다. 고정 출연자가 가끔 책을 추천하는 데 『책꽂이 투쟁기』도 그중 하나다. 졸저의 최초 제목이 『◇◇◇의 분투기』이었던 이유도 책을 주문하게 된 까닭이다.
『책꽂이 투쟁기』를 받아본 느낌은 제본이 특별하단 점이다. 실밥이 보이는 제본이라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하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가 낸 책이니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저자는 책이란 인간의 역사요, 독자의 역사라며 책을 읽고 사고, 출판하는 어려움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요즘 문고본이 왜 세상에 나오지 않는지 말하며 출판 대국 일본의 『이와나마 문고』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저자 김흥식의 책 읽는 이유는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하며, 인류가 어떻게 무에서 오늘날의 문명을 일구었는가를 알고 싶단다.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나 저자는 ‘서해문집’의 대표로 판단한다. 내가 사 읽은 책을 살펴보니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책 중 좋은 책이 있다. 『징비록』, 『난중일기』, 『간양록』, 『고려도경』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일부이고 『세상의 모든 지식』, 『유라시아 견문 1, 2, 3』, 『리바이어던』도 재미있거나 유익한 책이다.
번역에 대한 아쉬움, 전집에 대한 향수(이 부분을 읽으며 이사 올 때 짐을 줄이려 백과사전을 폐기한 것이 잘못한 짓이라 생각한다)도 드러낸다. 민음사에서 내놓은 삼국지 『위서』, 『오서』, 『촉서』를 읽은 것보다 『사기 세가』와 『사기 열전』이 재미있었다. 이를 쓰는 까닭은 “『삼국지』를 백번 읽은 사람과 다투지 마라”는 속설이 터무니없다는 저자의 인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꽂이에 LP와 CD도 많은 듯하며, 임방울의 음반을 들어보게 한다. (“판소리가 도대체 왜 20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 겨레를 들었다 놨다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융성했던 문화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라며) 저자의 음악에 대한 칭찬은 귀가 없어 공감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차분하게 유튜브 영상을 봐야겠다.
출판하는 사람이기에 IMF 경제 위기가 출판 문화계에는 문예의 시대가 가고 경제의 시대를 맞게 했다고 알려 준다. 도쿄 도서전의 쇠락과 베이징 도서전의 발흥, 유럽 서점 탐방기도 소개한다. 번역에 대한 불만과 감사는 독자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본격적으로 번역한 천병희 교수와 정암학당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낸다. 『변신 이야기』 외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책 5권을 장만해 두고 읽었으니 다행이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플라톤 전집이 소개되지 않은 나라라 고백한다.
유럽 헌책방에 들러 읽지도 못하는 책을 한 보따리씩 사 오는 심정을 밝혀 놓았다. 아! 이런 게 출판인의 마음이구나 하며 알게 되니 안타까움이 솟는다.
(p. 184. “서양에서는 이런 책을 이 시대에 이렇게 많이 읽었어요. 게다가 책의 수준을 보십시오. 결국, 지금 우리가 경제적으로 세계 몇 대 강국이라고 떠벌린다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경제적인 부문에 국한된 것일 수 있습니다. 저들이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울지 모르지만 근대 문명의 전통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지갑도 웬만큼 두툼해졌으니 문명의 두께를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벼락부자일 뿐 지성과 품성, 철학과 사고 면에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맨큐의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의 본모습을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아쉬워한다. 깐수로 불렸던 정수일 교수의 책도 비중을 두는 데 그의 책이 좋았으니 저자의 안목을 훔친 듯해 다행이다. 『국부론』과 『자본론』에 대한 시대사적 이해에 공감하며, 나름의 경제사를 졸저와 브런치북 『그 책, 좋아』에 정리할 수 있었음에 뿌듯함을.
중국 출판계가 우리나라를 앞선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판단하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이렇게 판단한 저자는 “애국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될 수 있지만, 지성의 눈은 어느 순간에도 냉철하다”라고)
고 전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보다 저자의 정의가 적확하다. 옮겨 보면 저자는 고전이란 “인간의 보편적 삶과 사상을 다룸으로써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삶의 방향과 깊이를 전달해 주는 작품”이라 말한다.
출판인이면서 영화저널을 냈던 경험으로 저자의 영화에 대한 평가에 『국제여단. 아마도 켄 로치 감독 작품인 ‘랜드 앤드 프리덤’을 말하는 듯, 『붉은 수수밭』,『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소개하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작품인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를 소개한다. 다 보고 감동이 일었던 작품들이다. 장준하의 죽음과 『사상계』에 대한 아쉬움은 경험하지 못한 내용이지만, 사상계의 목차만 봐도 수준이 높았음과 당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생긴다. 동시대인에겐 아픔이었겠으나.
『생각의 역사 ⅠⅡ』는 두 권 합하면 2,500쪽이 넘는다지만 사 볼 책 목록에 넣는다. 『예술의 역사; 경제적 접근』, 『미국의 아들』, 『니체 극장』도 읽어보고 싶다. 절판됐다면 중고서점이라도 뒤져봐야겠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의 역사 ⅠⅡ』와 『예술의 역사; 경제적 접근』을 사 읽는다) 술꾼은 술이 술을 부른다고 하듯 책 읽은 사람에게 책은 읽을 책을 줄줄이 연결해 준다. 이것도 책 읽는 재미다.
세 시간 책을 읽고 한 시간 운전해서 세 시간 강의하고, 다시 한 시간 운전해 집에 돌아와 구십 분 동안 독서 노트를 기록한다. 세 시간 인강으로 공부하고 자면 하루를 채운다. 밤 날이 차서 만 보 걷기는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