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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Feb 13. 2024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

   17세기 프랑스 모랄리스트 프랑스아 드 라로슈코프의 ‘잠언과 성찰’을 번역한 책이다. 504개의 잠언 중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를 골라본다.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우리 마음대로 생명을 연장할 수 없듯이 열정도 그렇다.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명하지만, 현재의 불행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우리에게 의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정신력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우리에게 결점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에 눈이 머는 사람도 있지만, 욕심에 새로운 눈을 뜨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다. 행동에 품위가 있어야 하듯이 생각에는 상식이 있어야 한다. 침묵은 자신 없는 인간이 택하는 가장 안전한 방책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억력의 부족에 투덜대지만, 판단력 부족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는다.      


인간과 일은 각기 고유한 관점을 갖는다.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가까이에서 보아야 할 것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야만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상대에게 아첨하는 일이 절대 없다고 일부러 말하는 것 역시 아첨하는 것이다. 속임수에 넘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자신이 누구보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강이 바다에서 모습을 감추듯이 미덕도 이익 앞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행을 미리 염려하는 것보다 당장의 불행을 참고 견디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이미 손에 넣은 명예는 앞으로 명예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담보물이다. 선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은 악인이 의외로 많다.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에게 가하는 학대는 사랑하는 상대의 매정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면 무작정 비난해 댄다. 우리는 온전히 백지상태로 새로운 연령층을 맞는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세월을 살았어도 새로운 연령층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법이다. 재주를 지닌 어리석은 사람은 있어도 판단력을 지닌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우리가 게으른 것은 육체가 게으른 이유도 있지만, 정신이 게으른 이유가 더 크다. ”     




   시공간이 달라서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의 잠언과 솔직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글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시공간을 떠나 울림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이 기준에 비출 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인간의 심성에 대한 사색과 성찰의 결과가 염세적이라는 역자의 평가 보다, 독자의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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