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조선조 양반가옥이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돼 있고, 사랑채는 바깥양반만의 생활공간이었음을 부러워한다.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는 여자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먼로가 글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 공간이 필요했듯이, 나도 나만의 공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다. 몇 년 전 강의를 듣다가 연수 강사인 건축가에게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나만의 공간을 꾸밀 방도를 물었더니만 답을 하지 않더라. 그가 나처럼 개인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요즘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 사랑채와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답을 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나만의 공간인 사랑채를 바라는 것은 책을 쌓아두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때로는 바깥바람을 들이고, 비가 오면 창문을 열어 빗소리와 흙내음도 들어오게 하고, 흡연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노래방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사랑채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아파트란 공간의 폐쇄적 개방성과 요즘 남자의 꼬락서니는 여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인지라 사랑채만 있다면 불러들일 친구들을 상상 속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