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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r 14. 2024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2017.03.14

   2017년, 주러 대한민국 대사관이 모스크바에 있으니 국제냉전은 끝난 거다. 한반도 곳곳에는 아직 차가움이 두껍게 깔려있다. 학창 시절 반공 교육을 받으며 읽었던 것을 다시 읽는다. 다른 시선과 관점에서 조금은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된다. 체제나 이데올로기 보다 개인의 삶, 생존에 무게를 둔다. 나이가 든 거다. 억울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운명에 스스로 포기하거나 발버둥 치던 죄수들이 떠오른다. 그곳 수용자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21세기 영화 <마지막 한 걸음까지>와 <웨이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하루의 삶을 200여 쪽 분량으로 묘사한다. 영화보다 시각적이라면 뻥일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역량은 ‘간결성’이라고 하고 싶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조건,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애,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성, 조직의 논리, 협력과 경쟁, 아부와 거만, 희망과 포기가 공존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독자가 뭐라 말한 것인가.


수은주가 영하 사십일 도를 넘어서면 작업장으로 끌려갈 염려가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관계의 단절 외에도 희망의 단절도 본다.

 작업량 배분 대기 시간을 “난로가 없어도 이 순간의 자유로움이란 너무나 행복한 것이다.”라고 한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추위를 피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독자는 놀란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수용소의 빵을 먹은 것은 최고급 와인을 마시는 것과 같다.

“눈보라가 친다고 해서 죄수들에게 무슨 이익이 될 만한 것은 없다. (중략) 그래도 죄수들은 여전히 이 눈보라를 고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비록 작업이 중지되는 이익이 있으나 지속되는 눈보라는 보급마저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백 그램의 빵이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빵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소장은 어떤 죄수도 수용소 구내를 단독으로 걷는 것은 금지한다고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명령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예; 정보 수집 불가 등) 이론과 명령, 권위 같은 것들은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다.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수용소 내에서 한국전쟁과 중국이 끼어든 이유를 토론한다는 설정도 있으니 세계의 많은 독자가 한국전쟁을 알 것이고, 솔제니친도 알게 된 것이다.

솔제니친은 슈호프를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밥그릇이나 넘보는 그런 작자는 아니다.”라고 주인공을 설정한다.     

“이제 이백 그램짜리 빵을 먹어도 좋고, 담배를 한 대 더 피워도 되고, 그대로 잠을 자도 된다. 그렇다. 오늘 하루는 왠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들떠서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시베리아 수용소의 죄수에게도 행복이 있다. 그렇다. 내가 있는 곳이 파라다이스라고 여겨야 한다.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중략)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시베리아 수용소에 있지 않음과 그 시대에 태어나 살지 않고 현재를 살고 있음이 복된 일임을 알게 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등장인물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 = 바냐(주인공)

쿠조민(옛날 반장)

폴토르 이반(당직 간수)

알료쉬카(침례교도, 선의 의지 소유자)

부이노프스키(전직 해군 중령)

바실리 표드로이치,

페츄코프(굶주린 개처럼 사는 별명 늑대)

흐로모이(식당 당번)

키다리 라트비아인

니콜라이 브도부쉬킨(진찰실 조수)

스테판 그레고리치(의사)

파블로(작업 부반장)

판델레프(병결을 빙자한 밀정)

볼코보이(규율감독관)

수용소측 중위

경호대측 중위

안드레이 프로코프예치(다른 반의 반장)

킬리(라트비아 출신)

자하르 바시리치(고향 콜호스의 반장)

치혼(고향의 목수)

세니카 클레프신(작업반장, 귀가 어둡다) = 추린(작업 반장)

칼리가스(라트비아 출신)

고프치크(우크라이나에서 벤데르파에게 우유를 날라준 죄목으로 들어온 16살 죄수)

쉬크로파젠코(작업장 조립식 건물 경호 죄수),

에이노(에스토니아인)와 다른 에스토니아인

프라하(볼코보이의 부관)

표트르 미하일로비치(신문 읽는 안경 쓴 남자)

체자리 마르코비치(전직 영화감독, 부유한 죄수)

예르몰라예프(시베리아 출신)

쿠르노세니키(간수)

막사장, 취사당번, 십장 등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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