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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r 15. 2024

인류 본사 01/04

이희수 지음, <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서 쓰는 주제 서평 >


16,500자, a4 10장 분량이라 4회로 나누어 공유한다


   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인류 본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소화할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서구중심 세계사를 배우고 가르쳤기에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 둘째,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기,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을 언급하여 더 깊게 배울 방향 찾기에 중점을 둔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찾는다.     


1부 :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1만 년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그리스 문화로 배워온 지식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일어난 문명(오늘날 튀르키에)의 소산이다.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히포크라테스, 밀레투스 3대 철학자인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만드로스도 아나톨리아 문명이 길러낸 인물이다. 성서고고학 측면에서 아라라트산은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고 추정되는 산이고, 에덴동산, 아브라함의 활동 무대였던 하란, 사도 바울의 생가, 초대 7대 교회와 산타클로스의 실제 무대인 성 니콜라스 주교 성당이 아나톨리아반도 문명에 속한다. 1만 2천 년 전 신전도시 ‘쾨베클리 테베’, 트로이, 히타이트, 황금 손을 가진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신화와 전설이 넘쳐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19세기 과학의 시대, 20세기,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 우리가 배워왔던 세계사, 특히 서양사의 큰 줄기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문명은 인류 문명이 뿌리이자 모태인 오리엔트에서 뻗어 나간 줄기 문명이라고 본다. 왜곡하거나 가볍게 취급한 아카드,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트로이, 프리기아, 아시리아, 우라르투, 메디아,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압바스 제국, 사파비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관점을 『인류본사』에서 시도한다.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나톨리아는 ‘해 뜨는 곳(anatole)’이란 의미다. 쾨베클리 테베 발굴로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혁명을 정착 생활의 시작으로 보았으나, 농경 이전의 수렵과 채집이 주된 구석기시대에서 대규모 도시 공동체와 문명이 존재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헬레니즘’이란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 이후 이 지역에 전해진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나 융합적 요소에 갖다 붙인 지극히 그리스적인, 나아가 서양 중심적인 표현이다.”(p. 211)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저자는 알렉산더가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광대한 페르시아를 발아래 두었다고 헬레니즘의 승리로 주장함은 지나치다고 본다. 알렉산더가 그리스 문화를 이식하여 오리엔트를 변화시켰다는 주장은 유럽 중심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과장(p.212)이다. 저자는 오리엔트에 세운 그리스계 후계국가들이 오리엔트 지역의 문화에 동화되어 점차 소멸한 점에 유념하자고 말한다. 노엄 촘스키도 같은 맥락에서 유럽 중심적 시각은 미국 자본주의가 20세기에 만든 프로파간다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동방 원정에 그리스 학자들을 대동하고 다녔고, 이를 토대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다고 배우고 가르쳐왔다. 알렉산더의 유명세는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한 그리스-로마 작가들 덕분이다. 고대문자의 해독과 고대 문헌을 이해하게 되면서 동서양 역사 인식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지만, 중동에서, 저자는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을 “단 13년 동안에 벌어진 인류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침략전쟁이자 약탈 전이었다.”(P.224)라고 평가한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1986년 사세휘가 쓴 『세계사를 서양인의 눈으로 보지 말고 동양인의 눈으로 보자』는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가 아닌 '일본인안목으로 본 세계사'에 관한 책으로 지적 호기심을 일으킨 첫 책이었다. 정수일의 『이슬람 문명』, 타임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은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이해를 돕는 책으로 유익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소화하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 조항 중 부부관계에 관한 내용은 놀랍다. “아내가 남편과 잠자리를 거부할 경우 그 배경과 전후 사정을 조사해 아내는 정절을 지키고 과오가 없는 반면 남편은 외출이 잦고 평소 아내를 크게 멸시했다면, 아내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면 아내는 자기 재산을 가지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p.79) “빚 때문에 노예가 된 경우 채권자의 집에서 3년 동안 노예로 일하게 한 뒤에는 풀어줘야 한다.”는 조항으로 보아 노예는 중세 농노보다 처지가 나은 듯하다. 저자는 신이 함무라비 왕에게 통치권을 주고 주문한 두 가지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왜 5 공화국이 떠오르는지…….)할 것과 약자가 고통받지 않는 국가 운영이라고 본다. 서구인들이 “게르만인은 모두가 자유롭고, 라틴인은 일부가 자유로우며, 오리엔트에서는 한 사람만 자유롭다며 절대권력 체제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고 강조한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원전 59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치드키야 왕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키루스 2세(21세기에도 이란에서 존경받는다)는 “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역하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성경과 유럽 역사서에서 성인으로 추앙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길가메시 서사시>》는 B.C. 2,000년 경의 작품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보다 1,500년 앞선 것이다. B.C.1274년 철기와 전차 3,500대를 사용한 히타이트와 청동 무기로 무장한 이집트 간 전쟁을 '카데시 전투'라 한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두 문명, 철기와 청동기 문명이 충돌한 대륙 간․문명 간 전쟁이었다. 두 나라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이집트-히타이트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는다. 양국 국경선 인정, 상호불가침, 호혜·평등의 원칙을 확인한 전문 12개 조로 인류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다.     


2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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