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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r 25. 2024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샤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1945년 10월 29일 월요일 파리에서 행한 장 폴 샤르트르의 강연을 속기하고, 재손질을 하지 않은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다.   


  실존주의 이해를 위해 샤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이해를 도울 몇 가지 개념부터 정리한다. ‘기투(project)’란 인간이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유’란 인간에 있어서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그리고 인간 실존은 결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속되거나 결정되는 법이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어떤 한 속성으로서의 질이 아니다. 자유는 인간 실존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처럼 전적으로 자유롭기에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불안을 느낀다. 자유가 불안과 짝을 이루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불안’이란 인간이 자기가 자유롭다는 것을 의식할 때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다. 불안은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함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나,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나를 의식할 때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다. 불안은 인간 실존의 조건으로부터 비롯된, 대상 자체가 없는 감정이다. ‘홀로 남겨짐’이란 세계 속에 피투 되어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조건이다. ‘절망’이란 인간은 홀로 남겨졌고, 인간에게는 그가 의지하고 기댈 그 어떤 본질이나 가치도 주어져 있지 않다. 절망이란 인간 실존으로부터 비롯된 이런 구조적인 상태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 자신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에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앙가주망’이란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상황에 대면하고 자신의 전적인 책임을 의식하고 그 상황을 변경하거나 유지 또는 고발하기 위하여 행동할 것을 결심하는 태도다. ‘자기기만’이란 인간이 불안을 회피하고 자기가 갖는 절대적인 자유를 자신에게 감추기 위하여 의존하는 방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특이한 형식을 가진 거짓이다.     

   카뮈는 인간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아무런 보람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으로 이런 고통을 ‘시지프의 형벌’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통을 시지프의 형벌에 비유한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소설 『구토』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공원도 도시도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알게 되면 속이 울렁거리고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토가 치민다”라고 주인공을 통해 말한다.     

   그래서 시지프나 우리는 단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는데 ‘희망을 갖고 사는 것’과 ‘자살하는 것’이다. 자살은 죽음과 함께 모든 문제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문제를 없애 버리는 것일 뿐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해결 방법은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는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사막에서 버티기’란 부질없는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자, 오지 않는 구원에 호소함 없이 사는 것이라 했으며 자살로써 회피하거나 기권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나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그러한 삶이 자기에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위대한 의식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때부터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자신에게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즉 정말 자기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더는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지 않고, 마치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매 순간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을 철학에서는 ‘실존한다’고 부르고, ‘실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자기로서 산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겹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그저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하면 전혀 달라진다. 지겹고 힘들어서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죽음 앞으로 미리 달려가 보라. 죽음 앞에 미리 달려가 보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지금까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이 하찮은 일로 변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하찮게 생각했던 일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2015년 3월 18일 오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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