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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Apr 21. 2024

<신간출판평>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민선정 지음

   책 제목이 나를 가리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받고도 이틀이나 펼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젊은 날의 나와 견주어 읽다 보니 우려는 기우였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15년간 S 생명에서 직장 생활에 전력투구하던 여성이 삶의 방향을 틀어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전적 에세이다.      


   책 분량의 1/3 이상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의 논리에 따라 조직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기업의 업무량과 분위기를 가시적,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조직은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한다. 손해사정 업무에서 언더라이팅, 사내 미디어 제적 송출, 경영전략팀 등 서로 다른 업무에 배치하더라도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해 낼 때 기업은 이윤을 얻는다. 유능한 직장인으로 인정받고 승진하려면 멀티태스킹하는 능력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공공기관 어느 직장이든 마찬가지다. 저자 민선정은 유능한 직장인으로 평가받기 위해 대학원 공부, 독서 등 포텐셜을 키워가는 것은 물론 야근을 일상처럼 해왔다. 글은 회사에서 승진하는 직장인의 전형을 보여 준다. 여기 까지라면, 열심히 사는 직장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함에 눈 뜨고 육아휴직을 통해 신이 보낸 어머니의 역할을 하려고 제주 한 달 살이를 선택한다. 제주 한 달 살이를 경험하며 삶의 방향을 틀 용기를 얻는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서울에서 제주라는 공간 이동을 통해 삶의 형상을 비교한다. 15년간 서울 회사 생활은 소외된 삶이다. 아파트에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웃이라 말하기 어렵다. 나만의 공간에 울타리를 세우고 침범자를 경계하는 삶이 만들 결과다. To-do 리스트에 따라 완벽한 업무 처리를 하려다 보니 가정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손에 든 다이어리는 자신을 평가하는 기초이고 경제적 이득과 완벽한 일 처리, 인정받는 직장 생활의 근거인 삶이 서울살이를 표현한다. 퇴직하고 정착한 제주에서의 삶은 회사 대신 자녀의 삶이 중심이고 자신의 삶이 중심을 둘러싸고 있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때를 가리지 않는 이웃의 방문,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하고 아픔을 다독여주는 이웃과 살며 가족과 이웃을 함께 신경 쓰는 삶이기에 To-do 리스트는 최소한이거나 비어 있기도 하다. 대신 제주에서 살아가는 데는 여유가 있고 때로는 넘치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던 서울살이는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시작했으나 종국에는 자동차로 바뀌지만, 일상의 탄소발자국은 줄어들었다. 가족과의 대화가 두괄식, 용건만 확실하기로부터 기다려주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로 바뀐다. 제주 올레길 걷기는 제주 살이를 의미를 확장하는 계기이자 산책 마니아로 변신하게 한 마중물이었다.      


   완벽한 업무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결과로 승진하고 연봉이 높아지는 직장 생활 중심의 삶에서 육아휴직으로 경험한 제주 한 달 살이를 통해 퇴직한 이후 제주에서 살아가는 40대 초반 여성의 삶을 그렸다. 비록 경제적인 여유는 줄었을지라도 자녀와 함께하는 행복과 여유라는 무형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저자의 퇴직 결정이라는 용기는 일에 지친 직장 생활인에게 걱정일 수도 부러움일 수도 있다. 저자의 결정을 옹호하거나 드러내고 자랑하는 문장은 없다. 독자의 몫이다.

   여유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거슬린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까지 아이의 유치원 등 하원을 맡아하고, 일과 후에도 자녀 양육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했던 남편에게 고마움,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조직 구성원의 1%가 되려 노력하고 얻었지만, 과정에서 육아를 아내에게 100% 맡겼던 독자의 회한 때문이다.      


P.S. 출판사 <마음 연결>에서 보내 준 책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읽고 쓴다.

   <신간출판평>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작가인지 출판사인지 결정 주체를 알 수 없으나 제목을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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