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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y 16. 2024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그래그 제너 지음

   영국 대중 역사 평론가의 책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저자 그레그 제너가 편집자의 노력으로 나오게 됐다고 밝힌다.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어떻게 엮어내는가는 편집자의 몫이다. 우리말에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가 알고 있는 방대한 낱개의 역사적 사실들을 잠에서 깨 활동하고 잠들기까지를 축으로 13개 장으로 묶었다. 깨어나기, 아침 식사, 샤워, 산책, 연락, 옷 고르기, 술 마시기, 이 닦기, 침대에 눕기, 자명종 맞추기란 장에서 각각에 역사를 추적해 적고 있다. 영국인이다 보니 서구에 치우쳐 기술하지만, 중국, 일본의 사례도 일부 소개한다. 잡학상식을 늘려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되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옮겨본다.

제1부 : 자, 하루를 시작해 볼까?

   시간 측정이 정확해짐에 따라 이윤과 효율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영국 전역에 그리니치 표준시가 적용된 것은 1880년이다. 그리니치 표준시를 경도 결정의 본초자오선으로 정하자는 것은 1884년의 일이다. 

   문명사회가 가장 처음 부딪힌 문제는 ‘그 많은 대변을 어디에 버려야 하는가’였다. B.C 2,600년경 인도 하라파에 오수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기 위해 집에서 정화조까지 이어지는 관을 설치했다. 로마에만 엉덩이를 나란히 하고 앉는 공중변소가 144개였다. 로마인도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주로 요강에 의존했다. 이슬람 사회는 위생을 중시해 변을 보고 난 후 몸에 오물이 남지 않을 때까지 닦아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자갈로 밑을 닦았다. 헨리 8세는 자신의 밑을 닦던 사람에게 ‘변기 담당관 Groom of Srool’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많은 급료와 특권을 주었다. 프랑스에서 화장실을 따로 두는 일이 일반화된 시기는 18세기다. 영국에서 수세식 변기가 보급된 것은 1861년 런던 대박람회 이후의 일이다. 중국은 9세기경 화장지를 사용했다. 요즘과 비슷한 화장지가 대량 생산된 시기는 1857년이다. 비데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일본에서다. 

   고대 로마인은 하루 한 끼를 먹었고, 배고프면 간식을 먹었다. 18세기 후반까지 영국에서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점심은 1800년대 초반에 시작된 관습이다. 전기냉장고가 부엌에 들어온 것은 1950년대다. 자위행위에 대한 혐오에서 말린 곡물로 만든 식품을 권장했는데, 후에 시리얼로 발전한다. 세계인구의 70% 정도는 우유의 젖당을 분해하지 못한다. 6,000년 전 돼지를 가축화한 곳은 중국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겨 먹지 않는 것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아 햄을 ‘금지된 죄악’이라는 뜻의 하람 haram으로 부른다. 유대교의 율법 카시루트에 따라 발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거나, 되새김질은 하지만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병조림은 나폴레옹 치세에, 양철 캔 통조림은 프랑스 기술을 가로챈 영국에서 확산시켰다. 상한 고기의 역한 냄새를 없애주기 때문에 향신료가 인기가 있었다는 주장은 요즘에 만들어진 허구다.(비싼 향신료를 먹을 만큼 부유한 사람이라면 신선한 육류와 채소를 먹지 상한 음식을 먹을 까닭이 없다.) 감자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프랑스 식품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다. 그는 프로이센 전쟁 포로로 3년간 감자를 배급받아먹고도 튼튼한 몸으로 풀려나 알아챈 것이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로 간 까닭은 빵의 원료인 밀을 나일강 유역에서 얻기 위해서였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빵은 사실상 공공서비스였다. 흰 빵은 비효율적인 이용방식이다.

   인류의 조상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의 공격을 자주 받았다. 크레타인은 욕조에 냉온수를 사용했다. 종교마다 목욕 문화가 달랐는데, 예언자 무함마드가 청결은 “신앙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공언해 이슬람 신도들은 날마다 몸을 씻는 일을 중요하게 지켰다. 이슬람이 위생 분야에 남긴 가장 큰 공적은 로마의 공중 목욕 전통을 계승하여 하맘 hammam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터키식 증기탕을 말한다. 십자군 전쟁에서 유럽인은 하맘에 매혹되었다. 이후 유럽 곳곳에 하맘과 비슷한 공중목욕탕이 생겨났다. 14세기 흑사병 창궐에 따라 공중목욕탕이 금지되었다. 비누는 19세기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제2부 :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

   페니키아 문자는 아람 Aram문자를 파생시켰고, 아람 문자는 히브리문자로, 그 후에 아랍 문자로 갈라졌다. 그리스 문자는 페니키아 문제 체계를 받아들였고, 로마자 체계를 만들었다. 러시아와 불가리아에서 쓰는 키릴 문자는 그리스 문자를 토대로 한다. 아테네에 헤메로드로메(하루 종일 달리는 사람)라는 직업이 있었다. 사도 바울이 역사상 최초의 대량 메일 전송자일지 모른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은 오랜 의복 취득방법이다. 아마포의 역사는 3만 년 전으로 올라간다.(람세스 보존). 로열 모슬린. <레위기>에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는 구절 탓에 중세에 줄무늬가 금기시되었고, 나병 환자, 사생아, 상형집행인 등 소외 계층만이 입었다. 파리에서는 자전거나 말을 탈 때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법규가(사실상 사문화되기는 했지만) 2011년까지도 폐지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티셔츠가 대세가 된 것은 1951년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상영 이후다. 단단한 유리와 코르크 마개 덕분에 샴페인의 원거리 도달이 가능해졌다. 샴페인 중 ‘크리스털’은 검색해 보니 70~80만 원이다. 

   젓가락은 손가락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식사 도구다. 농경의 시작과 인류의 과음이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서구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행위는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상징했다. 칭기즈칸의 정복으로 버려진 땅에서 다시 나무가 자라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억 톤이나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은 거다.(<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PLOWS, PLAGUES, and PETROLEUM의 내용과 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지적 생각(후일 금주법의 문제를 예상하듯) : “인간의 욕구를 법률로 통제하고 범죄가 아닌 일을 범죄로 규정하는 일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이므로 금주법은 그 자체로 일종의 무절제다.” 미국에서 금주법 시행 시기는 1919~1933ᅟ견까지다. 

   9,000년 전 파키스탄의 메르가르에서는 세계 최초로 치과 치료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인이 치과의사에게서 받는 치료 대부분이 프랑스 해군에 복무했던 피에르 포사르 덕분이다. 그는 ‘치아 교정’, ‘금이나 납으로 이를 충전’, ‘의치’, ‘치과치료용 의자’를 사용한 ‘치의학의 아버지’다. 플라스틱 치실과 칫솔은 1940년대에 이르러 가능했다.

   길이가 같은 진자 두 개는 진폭이 다르더라도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한 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역사 자체는 반복되지 않지만 사람의 삶은 반복된다. 


P.S.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와이즈베리에서 2017년 6월 초판을 본문 479쪽 분량으로 내놨고, 2018년 1월에 4쇄를 찍어, 독자가 읽었다. 2019.3.21.(목)에 읽고 적은 것을 오늘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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