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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y 18. 2024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지음

정말 많은 사람이 읽었다.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하던 책이다.

브런치스토리에도 여러 개의 글이 공유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와닿는 책을 읽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이덕무의 처지와 최근 나의 처지가 닮음이 있어서일까.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나의 처지는 마른 낙엽처럼 가벼울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어가면서, 이 년 가까이 잊고 지낸다지만 답답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순간순간마다 이덕무의 처지를 생각하며 용기를 낸다.   

  


   간서치(看書痴)는 젊은 시절 그의 친구들이 놀리던 말이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실학자라면 유형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역사 시간에 익힌 이름이며 간혹 이덕무가 있었다. 현명한 군주였던 정조의 후원으로 뜻을 펴려 했던 사람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 아쉬움…….     


‘책만 보는 바보’는 18세기 실학자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만들어졌다.

이야기 시작 1792년 12월 20일

첫 번째 이야기 : 나는 책만 보는 바보

두 번째 이야기 : 백탑 아래서 벗들과

세 번째 이야기 : 내 마음의 벗들(나의 벗 박제가, 나의 벗 유득공, 나의 벗 백동수, 나의 벗 이서구) 

네 번째 이야기 :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이 세상의 중심은 나 - 담헌 홍대용 선생, 선입견을 버려라 - 연암 박지원 선생) 

다섯 번째 이야기 : 마침내 세상 속으로(드넓은 대륙에 발을 내딛다, 백탑을 떠나 대궐로) 

여섯 번째 이야기 :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미래는

이야기 끝 1793년 1월 24일    

 

좋았던 부분을 옮겨 본다.

   햇살과 함께하는 감미로운 책 읽기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스무 살 무렵, 내가 살던 집은 몹시 작고 내가 쓰던 방은 더욱 작았다. 그래도 동쪽, 남쪽, 서쪽으로 창이 나 있어 오래도록 넉넉하게 해가 들었다. 어려운 살림에 등잔 기름 걱정을 덜 해도 되니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온종일 그 방 안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동쪽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어느새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하면 펼쳐 놓은 책장에는 설핏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책 속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면 얼른 남쪽 창가로 책상을 옮겨 놓았다. 그러면 다시 얼굴 가득 햇살을 담은 책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날이 저물어 갈 때면, 해님도 아쉬운지 서쪽 창가에서 오래오래 햇살을 길게 비켜 주었다.

   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가량, 두께는 엄지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 신비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하고한 날 좁은 방안에 들어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날마다 책 속을 누비고 다니느라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때론 가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숨 가쁘기도 하고, 때론 실제로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중략)

   온종일 방에 들어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책만 들여다보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간서치’라고 놀렸다.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말이다.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중략)


벗들이 지어준 나의 공부방

   벗들만 간간이 드나들던 호젓한 나의 집에, 별안간 굵은 나무와 연장을 짊어진 장정들이 들이닥쳤다. 집안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리둥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좁은 마당에 짐을 부려 놓은 사람들 뒤로 유득공과 백동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여전히 까닭은 알 수 없었다.

“매부, 이 사람들에게 마당을 좀 빌려주시지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백동수가 먼저 말을 했다. 그 말은 곧이곧대로 새겨 봐도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필이면 비좁은 내 집의 마당을 빌려 달라니, 차라리 집 밖 빈터가 더 넓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득공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여기, 방 한 칸을 만들려고 합니다. 편안하게 책도 읽고, 저희도 자주 찾아와 함께 지내고…….”

“......”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찾아온 벗들을 한 번도 편안하게 맞이하지 못한 지난날들이 그림처럼 지나갔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백탑(원각사지 십 층 석탑) 아래서 벗들과 어울렸고, 벗들이 이덕무의 공부방을 지어준 이야기다. 아! 짠하고 고맙다.    

 

   세 번째 이야기 ‘나의 벗 박제가’에서  

   서자 신분에 가슴이 아팠으나 무언가 하겠노라는 박제가를 그려 낸(읽어 낸) 이덕무의 모습에서, 내 처지는 얼마나 한가한가, 이것도 극복하지 못하면 무엇을 한다고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이는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굴레는 벗겨질 것이고, 이후에 나의 모습을 만드는 준비 기간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박제가는 수레에 관심을 두었고, 운종가를 거닐며 상공업의 발달과 사농공상의 구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그의 꿈은 정조의 신해통공(辛亥通共)으로 실현된다.

   이덕무는 맹자를 팔아 끼니를 때우고 유득공은 이런 이덕무에게 그의 좌 씨 춘추를 팔아 술을 내어 위로한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유득공의 멋진 우정이다.

   ‘나의 벗 유득공’에서 18세기에 ‘이십일도회고시’를 짓는다. 20세기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같은 맥락이리라. 유득공은 어린 시절 십구 사략(중국사)을 공부하며 왜 단군을 믿지 않는가를 한탄하였고, 심양을 방문하고 여러 책을 참고하여 ‘발해고’ 짓는다. 발해고에 써 준 박제가의 서문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나의 벗 백동수’ 백동수는 이덕무의 벗이자 두 살 아래 처남이다. 무과에 급제했어도 살길이 막막하여 기린협(인제)으로 식솔을 이끌고 떠났다가, 후에 정조의 부름을 받아 입궐,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짓는다.

‘나의 벗 이서구’에서 이덕무는 열세 살 아래인 벗에게 성학집요, 반계수록, 동의보감을 읽어보라 권한다.


네 번째 이야기 :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의 가르침과 추억이 넘친다. 홍대용으로부터 지구라는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으나 ‘이 세상의 중심의 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홍대용은 이덕무에게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를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으로부터 ‘선입견을 버려라’(코끼리를 처음 본 사람들의 예화로)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1778년 서른여덟에 중국에 가는 사신의 연행길 수행원(사신 30여 명, 전체 300명)이 된다. 요동 벌판에 서서 홍대용의 가르침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하고, 사고전서 7만 권이 있던 ‘유리창’에서 필담으로 중국 선비들과 정을 나눈다.

  검서관이 되어 규장각에서 일하며 정조와 교감하다. 1784년 유득공이 발해고를 완성하고, 정조는 백동수를 장용영으로 불러들여 무예도보통지를 찬 하라 명한다. 백동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었다. 현감으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적성, 양평, 부여, 비인 현감으로 나가다.     


여섯 번째 이야기, 아이들이 이어갈 조선의 미래는 

 그들의 노력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더 나은 조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훗날 그들의 노력이 그저 ‘옛날’로 치부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서운함을 드러낸다. 시의 고금과 공의 동서에서 시간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본다.

1793년 1월 24일 감기가 심해져 일어나지 못하고…….     

박지원은 이덕무보다 네 살 위고, 홍대용은 열 살 위다.

유득공은 이덕무보다 일곱 살 아래며, 백동수는 두 살 아래고, 박제가는 아홉 살 아래요, 이서구는 열세 살이 아래였다. 그러나 이덕무에게 박지원과 홍대용은 스승이었고,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는 벗이었다.     


‘책만 보는 바보’를 읽은 내내 즐거웠고, 가슴 아팠고, 행복했다.

2005년 초판이 나왔으나, 내가 읽은 것은 2010년 초판 21쇄로 보림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본문 288쪽이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낸 작가 안소영 님에게 감사한다.


P.S. 2014년 5월 17일 오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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