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충덕 May 28. 2024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존 벡위드 지음

좋은 책이다. 추천한다(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언제 샀는지 기억에 없다. 초판 2쇄가 2011년 12월이다. 사서 눈길을 주지 못하고 묵혔다. 저자 존 벡위드는 하버드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로 책을 통해 올해(2018년 시점에서) 60대 후반이거나 70대 초반이라 추측한다.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전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바지한 바가 있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자전적 이야기다. 과학, 좁게는 유전학 분야 연구가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세 가지를 새롭게 배운다. 인종 간 우열을 나치가 오용했다는 상식의 오류가 하나다. 최근 진화심리학이나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란 꽤 큰 분량의 연구도 사회생물학에서 유래한 것이고, 뿌리가 우생학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능을 연구한 젠슨이 미친 부정적 영향은 교육 분야에도 아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상처를 남긴 거다. 나치가 악용한 우생학은 미국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진화심리학과 스티븐 핑거의 노력도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한다. IQ에 관한 젠슨의 연구는 역사에 묻힐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존 벡위드의 삶을 따라가 보자.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13개 장으로 구성된다. 1장과 13장은 30여 년 전 대학원에서 함께 연구하던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과학을 떠난 과학자와 과학에 남은 과학자를 견준다. 우열이 아닌 가치 있는 마이웨이를 긍정한다.     


   2장은 과학자가 된 과정을 소개한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이유가 있어 과학자가 되었다지만 분자 생물학자인 건서 스텐트가 “여자를 꾀기 위해서” 과학을 했다는 주장을 소개하며, 자신은 망설임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더딘 과정을 거치며 과학자가 되었다고 밝힌다. 하버드대, 버클리대(캘리포니아 소재), 프린스턴대,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연구했고, 1965년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를 소개한다. 고향을 떠나면 죽는 줄 알고 사는 촌사람에게 독자에게 미국 동부와 서부, 프랑스에서 연구했던 존 벡위드의 삶에서 다이내믹함이 부럽다.     

   3장 ‘사회운동에 나서다’에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끌게 된 연유를 옮긴다.

“오펜하이머가 원폭 개발에 참여한 일을 후회한 것은 내게 과학자들이 똑같은 양심의 위기와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폭넓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에 대한 최초의, 가장 거리낌 없는 비판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이 특이할 만큼 폭넓은 인문학적 배경을 가졌기 때문임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1969년 영화 [Z]를 찾아봐야 할 듯하다. 1965년 미국 정부의 도미니카 공화국 침공,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사실, 1960년대 미국인의 국적 포기 상황 등으로부터 저자의 정치적 감수성이 바뀌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보스턴 지역의 좌파 교수였다고 소개한다. 1969년은 심리학자 아서 젠슨이 흑인들이 백인에 비해 지능이 열등하다고 주장한 해였다. 이는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자녀들에게 주어진 보상교육 프로그램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쓸데없는 세금 낭비라는 주장으로 확산한다. 이런 분위에서 백 위드는 <민중을 위한 과학>을 조직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과학자들은 대중에게 사회와 격리된 연구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력을 요구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     


   4장 ‘천사는 어느 편인가’에서 1969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기자회견을 한다. ‘유전자 분석은 중요한 과학적 업적인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위협이다.’라는 맥락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원자 물리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고백하는 상황에서 물리학자들의 딜레마가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는 유전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벡 위드는 과학 교육이 과학의 사회적 영향을 둘러싼 논쟁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역사의 일부를 상실하고 인간성을 잃고 있다고 한다. 이에 <민중을 위한 과학>은 과학의 혜택이 사회 부유층에게만 돌아가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20여 년간 사회운동을 하게 된다.     


   5장 ‘삶이 타란텔라’(남이탈리아의 활발한 춤곡이다)에서,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벡 위드가 나폴리에 체류한 사실은 정치적 성향에 인간적 요소를 가볍게 보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회상한다.      


   6장 ‘과학은 정치보다 뒷전인가?’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이 ‘과학자가 생산적인 과학 경력을 쌓아 가면서도 동시에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활동가가 될 수 있음을 밝힘’에 있단다. 독자는 충분히 느낀다. 세미나 수업에서 20세기 초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과학자의 책임을 토론하고 <해충박멸>이란 책에서 중국의 사회정책에 매료되었다고 밝히는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에서 문화혁명기의 에피소드로 다룬 내용이다. 중국의 메뚜기 잡기에 한때 누구는 매료되고 누구는 에피소드로 평가한다. 2018년에 내린 평가는 에피소드다.

선의로 사회운동을 지원한다고 해도 비판이 필요한 경우 비판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상황이 자신들이 믿었던 만큼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속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7장 ‘유전학의 어두운 역사, 우생학’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p. 142~143 Leilani Muir의 1959년 14세 강제불임시술 사례) 1928년부터 1972년까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2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앨버타주 불임시술법’에 따라 강제 불임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20세기 초 북미 우생학 운동의 성공에 따른 희생자들이다. 이러한 우생학 이데올로기는 독일 사회주의자, 초창기 소련 공산주의자에게까지 퍼져있었다. 미국의 공공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07년 인디애나주 강제불임법이 독일 최초의 우생학적 강제불임 프로그램들의 모델이었다. 1923년 독일의 유명 의사는 연방정부가 미국의 강제불임 관련법들을 연구하여 독일에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1924년 이후 우생학 운동이 미국에서 쇠퇴하기 시작하나 1924년은 갇힌 히틀러에게 우생학책이 전달된 해였다. 1990년대 후반 독일 유전학자 뮐러 힐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에서 인간 유전학과 우생학을 다룬 부분은 <인간의 유전>에 나오는 주장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유전>은 우생학과 생물학적 결정론이 교본이었다. 처음에는 독일의 과학자들에 의해, 나중에는 나치 정권에 의해 유전학이 극도로 오용되었다.

   “미국에서 우생학적 입법으로 인해 야기된 피해와 홀로코스트의 공포는 유전학자들의 참여, 침묵이 없었어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학 공동체 내의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상당수 멤버들이 일찍부터 자신들의 분야가 오용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분출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누가 알겠는가?”(p.160)

   과학의 오용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해를 입힐 수도 있도록 이용될 수 있는 의료적 절차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요인들로부터 성장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특정한 가치를 가진 주장들이 객관적 과학으로 위장하고 있음을 알아채야 한다. 특정 기간의 통계를 들이밀고 글쓰기 학원의 성과를 선전하는 양태를 바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8장 ‘범죄자 염색체의 신화’에서는 XXY 염색체를 둘러싼 오류와 미국에서 비네식 지능검사를 확산시킨 심리학자 고다르의 잘못을 다룬다. 고다르의 연구는 20세기 전반에 범죄자들에 대한 강제불임시술을 허용하는 법률안 통과에 영향을 미쳤다. 고다르의 주장(정신박약자와 수준 높은 여성이 낳은 아이들에 대한 조작된 보고서)은 심리학 교과서와 1950년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XYY 염색체 연구 과정에서 과잉 X, Y 염색체가 탐지되면 부모에게 무리한 동의서를 받았다. 이는 뉘른베르크 조약에 의해 금지된 ‘사기’, ‘협잡’, ‘강박과 기만’의 요소들까지 이용하였다. 이런 역사를 거쳐 이제는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의 편익이 위험을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입증해야 하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9장 ‘그것은 당신의 DNA 안에 있는 악마다’에서는 사회적 인식의 공고함을 상징하는 ‘Ground hog day’(똑같은 날을 되풀이하는 악몽에서 벗어나려 자살 등 모든 방법을 시도하는 P.189) 예로 들어준다. 아서 젠슨이 끼친 부정적 영향이 끝이 없음을 확인한다. 벡 위드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핑거 그리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강점을 끌어다 쓴다고 밝힌다. 재미있게 읽고 무신론자의 입장에 공감했던 『만들어진 신』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란 베스트셀러에도 독이 묻어 있다니……. 이미 사서 읽었는데......

벡 위드는 사회생물학자들(또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위험한 사회적 결과들을 초래할 수도 있는 과학적으로 옳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전학자들은 그러한 주장들을 공개적으로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10장 ‘이제 무섭지 않아요’에서는 1969년 기자회견, 일라이릴리 상 상금을 흑표범당원들에게 기부한 사건, <민중을 위한 과학> 활동, 씁쓸했던 XXY 이야기, 사회생물학에 대한 도전 등 개인의 연구사를 정리한다. 과학계 내의 우려와 찬반 속에서 무비판적인 언론의 호응에 맞서 통속 사회생물학 프로그램의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고, 사회적 처방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전학 지식을 허위 전달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벡 위드는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에 대해 적어도 립서비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고 평가한다.


   11장 ‘과학에서의 스토리텔링’에서는 과학을 딱딱한 이론으로만 소개하지 말고 어떤 과학 이론이 형성되기까지의 실수와 성과가 일어난 과정까지 소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좋은 방법론이라는 의견이다.      


   12장 ‘유전학자와 두 문화’에서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문 문화의 태도가 과학자들을 향해 잘난 척해왔으나 형세가 역전되어 과학자들이 잘난 척하는 태도를 보일 차례가 되었다고 한다. 인문과 과학의 만남은 쉽지 않은 일이나 소통이 되기를 희망한다.      


   13장 ‘과학자와 메추라기 농부’를 읽으며, 미국에서도 여러 사람이 인생의 이모작에 대해 상상을 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존 벡위드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세 사람이 번역하여 2011년 초판 2쇄, 본문 304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P.S. 2018.5.23.(수)에 읽고 썼다. 좋은 책이다. 추천한다(브런치에서 처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