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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Aug 25. 2023

영화 그을린 사랑

   영화의 배경에서 자연환경을 먼저 알아채는 것은 지리학을 배우는 덕분이다. 여름은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농작물 재배가 어려워도 올리브나 코르크에는 알맞은 Cs 기후란 걸. 대체로 습윤하고 겨울을 제외한 계절이면 꽃과 초목을 볼 수 있는 이곳과 대비되는 지중해 동안의 레반트 지역 레바논이 영화의 무대다. 


   아버지가 오빠인 상황은 동양 문화에서 상상할 수 없다.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문화는 원류가 고대 그리스에 있기에 가능하고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된 거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시작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서양 사람들의 의식이 깔려있다. 주인 양반을 대신해 사할린으로 대신 징용하였다가 수십 년 만에 귀향하고도 마님의 안부를 묻는 장면에서 한국 사람이 한을 느끼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생명은 어쨌거나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평생을 두고 실천한 주인공의 삶의 방식과 감옥에서 15년이란 기간 동안 노래한 여인의 노래하는 힘에는 누구에게나 경외감을 줄 수 있었으리라. 영화 속 어머니의 삶이 통과해야 했던 명예살인의 위험, 사랑의 결과와 강간의 결과를 함께 받아들여야 했던 결정, 테러의 결과로 수감생활, 디아스포라로 살아오는 과정,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통해 인생은 오디세이 서사시라는 건 21세기에도 유효함을 확인한다.


   종교적 믿음은 사람과 집단을 미치게 만든다. 양보해도 잘못된 신앙은 파멸을 부른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일갈이 허튼소리만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도구로서 종교만이 참된 종교일 거다. 무신자인 내 선택이 다행스럽고 지지한다.


   리더란 모름지기 비전을 제시하고 영감적으로 구성원을 동기화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 속 테러 집단의 리더는 어머니에게 테러를 지시했지만, 고통의 시간 뒤에 수하의 삶을 걱정하고 피난처를 마련해 주었다. 제시한 비전은 잘못된 것일지라도 캐나다로 보내 삶을 이어가도록 한 것은 자신의 몫을 일부라도 해낸 것이다. 알 파치노도 그랬듯이 마피아나 테러 집단은 같은 속성을 가진 동류다. 쉽게 뒤통수를 치고받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 속성은 부러운 면이다. 


   영화 속 현재 시점의 또 다른 무대는 캐나다이다. 아마도 퀘벡일 거다. 프랑스인들의 디아스포라. 영화의 무대이기도 하고 감독의 자람터이기도 하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레바논 사람 중 일부는 프랑스어와 가톨릭을 물과 공기처럼 여겼다, 프랑스를 매개로 레바논에서 캐나다 퀘벡으로 이어지는 이주는 좋든 싫든 프랑스와의 연결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21세기에도 프랑스는 프랑코 포니를 통해 문화의 힘을 붙잡고 있다. 


   어떤 대의든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전쟁을 해서 안된다. 스메들리 버틀러가 말한 ‘전쟁은 사기다’의 결론을 기억해야 한다. 최소한 전쟁의 개시를 엘리트가 결정하지 말고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할 군인들에게 선택하게 하라는...... 공증인의 직업의식도  서양 계약문화의 단면을 보여 준다. 우리에겐 조금은 낯설어 과장된 듯하지만.


   현재의 나가 행복이란 증거이며 ‘Paradise is where I am’이 영화를 본 관객이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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