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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11. 2024

시간과 타자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귀가 얇은 탓이다. 내 수준을 아직도 모르는 탓이기도 하다. 강신주가 책을 소개한 건 탓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이 20세기 서양철학의 주류다. 주류에서 독창적인 철학을 펼친 이가 임마누엘 레비나스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인간 ‘사유’가 데카르트 이후의 관념론의 전통적인 생각이다. 레비나스가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든 거다.     


「존재 부조리의 경험과 주체의 출현」에서 “삶이 그 내용을 상실할 때, 모든 것이 무의미할 때, 그러면서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을 때, 그 순간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이러한 단적인 존재를 레비나스는 ‘있다(il y a)’라고 부른다. 


 「향유, 거주 및 노동」에서 “사물들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 존재는 근본적으로 염려하는 존재이다. 레비나스는 염려가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존재방식이 아니라 즐김과 누림, 곧 향유(jouissance)가 가장 근원적인 존재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거주와 노동을 통해서 삶의 지속성과 안전을 확보할 때 내재성으로서의 주체성은 세계를 소유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욕망, 즉 전체화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의 주체성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다.


   「타인의 얼굴」에서 타자와의 비대칭성, 불균등성(누구는 부자이고, 가난하다) 등이 인간들 사이의 진정한 평등을 이룰(동정과 이타로) 수 있는 기초이고, 이런 의미의 평등만이 약자를 착취하는 강자의 법을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를 통해 수태하고 이를 통해 시간은 무한성의 차원, 절대적 미래, 폭력과 죽음에 맞서는 무한한 잉여의 차원을 얻을 수 있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사랑은 언어와 더불어 타자와 관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생산성을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유한성으로부터 구원받는다. 아이의 출산으로 완전히 새로운 미래,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시간은 아이를 통해 다시 젊어지고 푸르름을 띠게 된다.     


   레비나스 철학의 근본 물음은 ‘1500년 동안이나 기독교 복음을 믿어왔는데 어떻게, 2차 대전에서 엄청난 살상과 파괴를 자행할 수 있었나?’ ‘전쟁의 폭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에 있다. 레비나스는 전쟁과 서양철학의 전통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전쟁은 사람을 전체에 복종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전체주의적이다. 그런데 서양 철학은 대체로 하나의 이념으로 모든 것을 통일하고 포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본다. 레비나스는 전체성의 철학, 전쟁의 철학에 대항하여 어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철학을 구축하고자 한 것이라 한다.     


『시간과 타자』는 1996년 1판 1쇄가 나왔고, 독자가 읽은 것은 2015년 6월 17쇄, 본문 182쪽 분량이다. 번역자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해설(32페이지 분량임)이 없었다면, 두께와 상관없이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영화도 철학도 헛갈린다. 과문한 탓이지만. 


P.S. 2016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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