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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Nov 23. 2024

특별할 것 없이 지낸 하루

특별할 것 없이 지낸 하루를 돌아본다.     

토요일,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5시 반이다. 두 손을 마주하고 빠르게 비벼낸 마찰열을 두 눈두덩에 옮기고, 다시 비벼낸 열로 이마와 양 볼, 턱을 깨운다. 책을 읽자고 거실 책상에 스탠드 등을 켠다. 아침 먹기 한 시간 전에 먹으라는 복용법에 따라 식도염 치료 약을 미지근한 물을 반 컵 따라 목뒤로 넘긴다. 종합검진 덕분에 알게 된 증상 없는 염증 탓에 한 달을 이렇게 해야 한다니 성가신 일이다. 책을 펴 읽기 전에 스마트폰에서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를 검색해 3대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 지수가 어떻게 변했나 만 보기로 한다. 아내 학교에서 교원 임용고사가 치러진다고, 교육감이 7시 50분에 방문하기로 돼 있다고 아내가 출근을 준비한다고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아내가 출근하면 책을 읽자고 미루고 CBS 이철희의 주말 뉴스쇼를 듣는다. 명지대 박정호 교수가 설명하는 비트코인의 역사와 트럼프 간 상관관계를 듣다 보니, 박 교수는 경제를 참 쉽게 설명한다. 7시경 아내는 출근한다. 뉴스쇼 듣기를 멈추기 아까워 아침밥을 먹으며 마저 듣자는 핑계로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낸다. 밥 먹을 땐 유튜브를 보지 말라는 아내가 출근했으니, 뉴스쇼가 끝날 무렵까지 듣기만 한다. 어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려면 9시 20분이면 출발해야 시간을 역산해 보니 샤워해야 한다. 부드러운 모로 양치하고, 면도하고 머리 감기 등등 절차를 마치고 손톱을 깎기를 찾는다. 지난주에 어머니 손톱을 보고 오늘은 손톱을 깎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낸다. 9시 15분이다.


26층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쉬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간다. 토요일 오전이라 한산하다. 요양원까지는 40분을 가야 한다. 요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법 큰 마트가 있는 다행이다. 요구르트 40개와 귤 한 봉지를 사 들고 요양원 입구에서 벨을 누른다. 우리 어머니 만나러 왔습니다.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에. 천천히 하세요. 입구에서 코로나 진단키트로 면회할 수 없지 않음을 확인하고 들어선다. 보통 10시에서 30분이 지나면, 요양원 국장님은 이제 어르신 올라갈 시간이라거나 다른 면회자가 올 테니 면화는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귤을 사 온 걸 보고는 귤의 하얀 부분은 소화가 잘 안 된단다. 귤 속껍질까지 벗겨내고 나누어 드리니 귤 한 개만 먹어도 그만 먹겠다는 말에 맘이 좋지 않다. 우리만큼 소화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손톱을 깎아 드린다. 발톱도 깎고. 면회장 근처를 서성이던 직원이 다가와 오늘이 어르신들 손발톱 깎는 날이란다. 우연히도 내가 날을 잘 맞춘 거다. 손발톱이 두꺼워져 큰 손톱 깎기를 써야 한다. 줄로 깎은 손발톱을 갈아 부드럽게 마무리하니 10시 50분이다.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오기로 약속한다. 어머니가 살던 집에 들러보니 형이 지난밤에 와서 빈집을 지킨 모양이다. 믹스 커피를 두 잔 끓여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시동을 켜고 카톡을 열어 보니 후배가 빙부상을 당했노라는 메시지가 와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평상복으로 집을 나왔으니 서산 장례식장에 가려면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오일 게이지가 밥을 달라기에 주유소에 들른 차에 자동 세차까지 해 버린다. 조의금 봉투를 쓰기보다는 통장으로 조의금을 입금하고 출발한다. 출발하여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고속도로를 타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진다. 소리를 질러보고 허벅지를 때려 보고 아에이오우를 크게 발음도 해 보지만 소용없다. 예산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마른풀을 태우니 조금 나아졌으리라 여기고 다시 출발한다. 서산 가는 길. 월요일 아침이면 이 고속도로를 타고 태안까지 달렸던 추억이 떠오른다. 지난 일이다. 장례식장엔 여러 사람이 있었으나 내가 아는 사람은 입구에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한 사람뿐이다. 상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산의 장례식장 상차림에 관해 설명을 듣는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나는 그저 물이나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떡 두 개, 귤하나, 방울토마토 하나, 오징어포 3개, 과자 2개를 담아 내온다. 작지만 예쁘게 포장돼 남김없이 먹고 가란 뜻으로 해석하고 사진으로 담았다.

다음 조문객에게 상주를 양보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어디쯤 있느냐고. 예산 휴게소에서 집으로 가는 중이라니 부천 처가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94세인 장모님을 뵈러 처형과 아내가 격주로 다녀오는 일은 주말마다 하는 일이다.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감기몸살 기운이 남아 있어 목소리가 변색 돼 있다. 아마도 내가 운전하고 부천에 함께 다녀오자고 말하고 싶었던 걸로 안다. 전화를 걸어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오후 4시 반경 집에 들어서니 아내는 지금 출발하면 서해안 고속도로가 막힐 것이 뻔하다며, 내일 새벽에 올라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피곤한 상태에서 오늘 출발하느니 내일 새벽이 나을 듯하다. 그러기로 합의한다.


책을 읽을 것인가? 브런치스토리에 내 글을 읽어준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어 볼 것인가? 후자를 선택하고 PC를 켜 브런치 스토리에 접속해 읽고 넘기고, 읽고 넘기고,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넘기기를 반복하니 3시간이나 시간을 보낸다.      

자기 전에 1시간 만이라도 읽자.

특별할 것이 없이 지낸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하루를 그렇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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