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지음
서양 경험론과 정치철학
공자의 눈으로 읽고 따지다
2025. 7. 21(월)
들어가기 / 공자철학의 서천西遷과 경험론의 세계사적 승리
서구중심주의자들은 19-20세기 150년의 역사적 경험에 고정시키고 근현대의 세게사를 서구중심으로만 이해한다. 그들은 공자철학과 불교철학이 고대로부터 서천西遷을 개시하여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송대宋代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극동문명과 공자철학이 15-16세기 서양의 르네상스와 17-18세기 계몽사상의 흥기와 발전에 ‘본질구성적’영향을 미친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유럽중심주의적 문명담론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유럽 후진국’독일과 전후 미국에서 ‘날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p.30)
17세기 말 윌리엄 템플(1628~1699), 19세기 말 쇼펜하우어(1788~1860) 등은 중국철학과 인도철학이 고대 그리스철학과 기복교 헤브라이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추적해 상세히 밝혔다. 윌리엄 템플은 중국의 기론氣과 공자의 지인知人철학 사덕롬 군자치국론도 소크라테스 이전에 차마고도를 넘고 인도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 전해졌다고 밝히고 있다(p.38) 피타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인도에까지 가서 사덕론 윤회사상 등의 중구 인도철학을 들여왔고, 리쿠로구스의 법제도 모조리 인도에서 왔다고 말한다.(p.38)
피에르 벨(1647~1706)은 17세기 말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 인도에 가서 유학했던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르코스(기원전 380~320년 경) 피론(기원전 360~270년 경)등을 통해 인도와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아낙사르코스와 피론은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 인도에 가서 체류하며 회의론을 배워 그리스로 들여왔다고 말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기독교의 ‘사랑’ 또는 ‘인간애’도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윤회설과 이데아론도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분명하게 못 박는다. 쇼펜하우어는 기독교에 동물사랑의 덕목(동물학대 관습)이 빠진 것을 유대교 탓으로 돌린다. “이성 없는 존재자들(따라서 동물들)이 ‘물건’이고, 따라서 수단으로 취급해도 된다는 칸트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비판받는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이 아니라 이성을 도덕의 기초로 들이밀고 내세우며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합리주의적 서양철학을 유대전통의 ‘사변적 신학’으로 경멸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서양문명에 고유한 잔인한 동물학대는 동물학대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동물적’ 인간들로 지목된 ‘열등한 백성(대중)’과 ‘열등 민족’에 대한 계속된 대학살과 홀로코스트로도 징험 되었다. 공자철학이 실로 본격적으로 ‘공자’ 이름으로 서양에 전해진 시기는 15-16세기와 17-18세기였다.
‘유럽적 근대성’이 마치 헬레니즘과 유대 기독교 헤브라이즘으로부터 일관되게 도출되어 나온 것인 양 생각하는 착각은 칸트, 마르크스, 베버, 이래 유럽철학자들이 날조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이후에 미국 교육학자들이 확산시킨 허구의 산물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착각과 허구가 오늘날에도 횡행하고 있다. (나도 공교육에서 그렇게 배웠다)
유럽을 근대화한 서구 계몽주의는 본질적으로 ”반反 유럽적“ 사상조류였고, 그것은 극동의 자유평등하고 인애로운 세속적, 관용적, 유교문명과의 충격적 조우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유럽’은 경험과학적 실사구시의 엄정하고 온유한 공자철학이 유럽철학에 가한 ‘충격’의 소산이었다.
보수적 집계에 의하더라도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유럽에서 출판된 아시아 관련 서적들은 1,500종에 이른다. 그만큼 16-18세기 유럽인들은 극동을 배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열성이었다. 300년 동안 송대에 개시되어 계속 확산된 ‘유교적 근대성’은 꾸준히 서천西遷했고, 특히 17-18세기에는 중국의 공자철학과 극동제국의 유교적 정치사상, 경제철학, 제도, 사회문화가 서양으로 쇄도해 들어갔다.(p. 53)
○ 17-18세기 공자철학과 극동문화의 서천
르네상스는 송요원나라의 풍요와 총포, 화약, 나침반으로 특징지어지는 극동의 선진적 ‘물질문명’을 배경으로 꽃 폈다. 반면, 17세기 말과 18세기 계몽주의는 명 청대 중국과 여타 극동 제국의 철학적, 문화적, 제도적, 무신론적 ‘정신문명’의 충격 속에서 공자철학을 서구철학과 짜깁기하고 접붙이는 ‘패치워킹’으로써 발생했다.
존 로크, 스피노자, 컴벌랜드는 중국을 공부하고 공자를 알았고 중국철학과 공맹철학을 수용해 써먹었다. 이 시기 공자철학과 유교적 정치문화의 본격적 ‘수용’과 ‘유럽화’는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미국 등 11개 극서제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미국,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는 공자열광과 ‘시누아즈리(chinoisrie : 17-18세기 유럽의 중국풍 예술과 공예)’가 유행했다.
농본주의, 공맹과 사마천의 ‘무위無爲시장’, 농상 양본주의, 공자의 양민養民교민敎民국가론, 구빈제도, 관료제, 맹자의 역성혁명론 등이 유럽으로 건너가 케네의 중농주의 경제론, 복지국가론, 공무담임제, 저항권의 이념으로 발전된 것이다.
○ 동서문명의 상호 패치워크를 통한 근대화
저자 황태연은 극서와 극동의 두 근대문명간 ‘유학적 공통성’ 또는 ‘유교적 유전자’의 동서 공유로 다음과 같은 입론立論을 세우고 있다. “어떤 나라든 공자철학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근대화된 반면, 공자철학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전근대 또는 저근대 상태에 처했다”(p.63) 이것으로 막스 베버의 개신교적 근대화론, 오리엔탈리즘 등 동서이분법적 문명이론을 분쇄할 수 있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관점이다. 서구 문명은 야누스적 중첩된 중층구조를 보여 준다. 19-20세기 낸내 자유,평등,관용,인권,세계주의 등 ‘표층’의 점잖은 ‘신사형태’와, 서양의 저류低流문화로 흐르는 호전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파시즘, 나치즘 등 ‘심층’의 야만적 ‘왈패행태’를 번갈아 보여왔다. 신사형태는 공자철학으로부터 유래한 ‘군자’의 본새이고, ‘왈패 형태’는 원래 ‘금욕적 전쟁종교’였던 기독교(베버)의 정신에 따라 1000년간 마녀사냥을 일삼고 십자군이래 이교지역을 무력으로 침공하던 호전적 헤브라이즘의 저류문화적 본새이며, 제국주의적 정복과 ‘정의로운’ 전쟁국가를 이상국가로 여기는 그리스 로마의 전투적 헬레니즘의 발로다.(p. 64)
○ 지물知物을 위한 공자의 경험적 인식론
공자 인식론에는 세 기둥이 있다. ① 학이사지學而思之(경험하고 나서 생각함),
② 술이부작述而不作(서술序術하나 작화하지 않음),
③ 궐의궐태闕疑闕殆(의심스러운 것을 비워 두고 위태로운 것을 비워둠)이 그것이다.
學而思之는 “경험하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앎이 공허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그 앎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명제를 사자성어로 요약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학이후사先學而後思(경험에서 배우는 것을 우선하고 사유하는 것을 뒤로 함), 주학이종사主學而從思(경험을 주로 삼고 사유를 종으로 삼음), 박학신사博學愼思(널리 경험하고 신중히 사유함)의 뜻을 함의한다. 사색과 합리적 추리를 위해서는 다학多學 또는 多聞多見의 博學과 審問(실험)으로 모으고 쌓은 경험지가 먼저 필수적이다. 온고溫故는 곧 박학=다문다견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지난 경험을 쌓아 익히고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명제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은 “서술序術하나 작화하지 않는 것”이다. ‘학이사지’는 널리 경험하고 나서 그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을 경험적 사실의 순서에 따라 체계화하고 언어화해야만 ‘지식’이 산출된다. 언어는 들을 수 있는 사유이고, 사유는 들을 수 없는 언어다. 序術은 (사유의 논리적 순서에 따라서가 아니라) 경험의 ‘사실적’ 순서에 따라 언술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많고 넓은 경험(박학, 다학, 다문다견) 못지않게 일이관지하는, 체계적으로 일반화하는 서술이 가져다주는 인식효과를 중시했다.
궐의궐태闕疑闕殆는 인간의 온갖 경험과 지혜로도 인식할 수 없는 ‘의심스러운’ 불가지적 사항들과 넓은 경험 없이 사변적 예단과 추정을 하다가는 독단과 공상에 빠질 위험이 높은 ‘위태로운’ 사항들을 겸허하게 서술과 판단에서 제쳐 놓는 중도적 회의론을 뜻한다. 인간은 ‘득도’할 수 없고 오직 근도近道(개연적 지식 획득)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물은 본말이 있고 사건은 시종이 있으니 선후를 알면 ‘근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정적 ‘의미’를 인지하고 평가하는 것을 ‘이해’라고 부른다. 반면, 사물의 속성을 아는 것을 ‘인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의미들 간의 ‘연관’을 이해하는 것을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속성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 즉 이동異同, 원근, 대소, 다소관ㄱ몌와 인과관계(필연적 연결관계)에 대한 서술은 ‘설명’이라고 부른다. 인간적 의미의 이해와 해석을 다루는 방법론은 ‘해석학’이고, 자연속성의 인식과 설명을 다루는 방법론은 ‘인식론’이다.
○ 지인知人을 위한 공자의 공감적 해석학
공자는 ‘자신의 도(학문방법)’를 일이관지一以貫之 로 자술한다. 증삼이 이를 忠恕로 풀이하는데, 충서의 서恕는 파자하면 ‘여심如心(같은 마음)’으로 동감 또는 공감이고 충은 충실성, 즉 일관성이다. 자공이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한마디를 묻자 “그것은 서恕니라!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 恕는 공감이다. 사람에 대한 공감은 ‘동심(사랑으로서의 정서적 일체감)’을 뷰발한다. “ 두 사람의 동심은 그 예리함이 쇠를 끊고, 동심의 말은 그 냄새가 난과 같다. 난향을 풍기듯 풍미로우면서도 쇠를 끊는 이 부드러우나 파격적인 힘을 품은 ‘동심’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바로 ‘공감’이다. 최근 서양철학자들도 공자의 ‘서’를 ‘공감’의 의미로 이해하고, 현대공감도덕론의 논의에 공자와 맹자의 공감 개념을 원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로지 공감적 이해를 통해서만 자아와 타아의 존재를 알 수 있다.
○ 경험론과 경험과학의 세계사적 승리
공자의인식론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서양의 인식론 철학사조는 베이컨이래 전개도니 17-18세기 근대 영국의 비판적 경험론이다. 비판적 경험론은 감각적 경험을 격상시켜 우연적 경험과 계획적 경험(실험)을 구축하고 이 경험에 대한 비판적 신사愼思, 명면明辯의 일반화, 체계화 작업을 통해 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이중적으로 비판적인 인식방법이다. 반면, 합리론은 이성을 초인간적 인식, 논증능력으로 부풀려 초인간적 이성으로 세상을 연역적, 수리적으로 인식하고 비판하는 계몽방법이다.
계몽시대에 형성된 근대 합리주의는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나치즘과 파시즘의 과학적 인종주의 반혁명, 과하주의적 자연정복과 자연파괴(20-21세기)의 기저에 놓인 세계관이다. 반면, 비주류의 경험주의는 청교도 혁명, 며예혁명, 미국독맂혁명, 미국 건국이념, 근대 광역국가의 대중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기저에 놓인 세계관이다. 경험적 인식론이 민주주의로 귀결되는 반면, 합리적 인식론은 모두 독재로 귀착되는 인식론과 정치의 긴밀한 연관성이다. 순수철학만이 아니라 정치철학도 민주주의 독재 이론의 뿌리를 알기 위해 인식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과학기술은 베이컨의 경험론적 인식론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베이컨의 성선설, 컴벌랜드의 인애도덕론, 허치슨의 도덕감각론, 데이비드 흄의 경험적 인간과학과 도덕과학, 애덤 스미스의 공감적 도덕이론 등 18세게 영국 경험론자들의 도덕론은 공맹철학을 거의 정통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P.S. 『베이컨에서 홉스까지』의 들어가기(P.29-104) 를 공부하며 요약한 것이다. 이제 겨우 서문만 읽었다. 『논어』, 『맹자』, 『대학』, 『공자와 세계(전5권)』,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패치워크문명의 이론』을 읽고, 『베이컨에서 홉스까지』를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