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지음

by 노충덕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ERIC HOFFER)가 죽은 뒤 27개의 에피소드를 모아 출간한 자서전을 번역한 것이다. 그의 삶, 80여 년은 웨이터 보조, 사금 채취, 농장 노동, 부두 노동을 하면서도 독서광으로 살았기에 떠돌이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철학자라라고 평가된다. 그를 철학자, 사상가로 평가하는 데는 떠돌이 삶에서 얻은 경험과 독서에 깊은 사색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책을 읽는 내내 푹 빠져 있었다. 모처럼 정시 퇴근한 까닭에 저녁을 먹고 읽기 시작해 커피 두 잔과 담배 두 개비만으로 금요일 저녁을 보낸다. 자서전을 읽으면서 어릴 때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책을 붙잡고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끔 반평 크기의 아파트 창고를 책 읽는 장소로 바꾸고 싶다 생각한다. 책을 읽기에는 복잡한 가구나, 스마트폰이 방해가 돼 단순한 공간이 제격이다.


에릭 호퍼의 글이 짧은 것은 아포리즘 형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장을 넘길 때 편집자가 배치한 금언 중 몇 개는 기억하고 싶다. 옮긴이가 선정한 것도 있다.


신천지를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기도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패배자들인 경우가 많다.

인간이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자유는 성가신 부담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근거가 약할수록 자신의 국가나 종교, 인종의 우월성을 내세우게 된다.

교육의 주요한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나 이외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용기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괴테-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다.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데서 비롯된다.

종교는 신이나 교회, 성스러운 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에, 아니 그보다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 종교적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냐면 몽테뉴도 지적했듯이 ‘자기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 국한된 병’이기 때문이다.


2003년에 처음 호퍼의 자서전이 번역 출간됐고, 내가 읽은 것은 이다미디어에서 2014년 2월 개정판 1쇄로 내놓은 것으로 본문 216쪽 분량이다. ‘맹신자들’과 ‘영혼의 연금술’도 읽어보고 싶다. 에릭 호퍼의 떠돌이 삶에 다가가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서 캘리포니아로 꿈을 찾아 헤매는 20세기 초 미국인들의 힘든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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