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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27. 2023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모두 일곱 권이다. 7년에 걸쳐 출간됐다.(오늘 다시 확인하니 8, 9권이 나왔다) 수년 전에 3권까지 읽은 줄 모르고 읽다 보니 1,2,3,5,6,7,4권의 순으로 읽었다. 


 『중국인 이야기 4』는 쑹메이링을 둘러싼 장쉐량과 장제스의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란 소재로 시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까지 국공합작품인 황푸군관학교 출신들의 활약상,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수난과 평민화 과정도 소개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북한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가도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후일 통일된 이후에 더 정확하게 밝혀질 일이지만, 어느 곳에서도 배운 바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중국과 북한의 연결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신 중국 수립 초기의 외교부 풍경도 흥미진진하다.     


  장학량(장쭤린)과 장쉐량(장학량)은 만주를 배경으로 걸출한 삶을 살았다. 장쉐량이 장제스를 시안에 감금하고 국공합작을 이끈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장제스가 장쉐량을 50년 넘게 연금시켰고, 연인이었던 쑹메이링의 도움으로 장쉐량이 천명을 다했던 거다. 책 뒤표지에 소개한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36년 12월 12일 밤, 1,200년 전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시안 교외 화청지에 총성이 울렸다. 정변을 일으킨 중국의 2인자 장쉐량은 최고 통치권자 장제스를 인질로 삼아 2차 국공합작을 요구했다. 쑹메이링은 쟝쉐량이 남편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안 공항에 내렸을 때 장쉐량을 발견하자 얼굴이 굳어졌지만 곤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이 남아 있다. 사지에 빠져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다. 마중 나온 장쉐량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다. 반가워하기는 장쉐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때 연인 사이였다.”

   시안사변은 중국 현대사의 방향을 틀었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기상천외한 이야기와 함께 쑹메이링과 장쉐량의 이야기는 중국인들에게 영원한 얘깃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쑹메이링의 기억에 “장쉐량은 동북이 일본 관동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그간 즐기던 아편과 모르핀을 끊어버렸다. 부관에게 권총을 건네며 내가 다시 아편에 손을 대면 나를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일주일 만에 효과를 보았고, 비행기도 직접 조종하고 자동차도 제 손으로 몰 때가 많았다.”     

1917.7.25. ‘카라한 선언’ : “러시아 제국 시절 중국과 체결한 모든 불평등 조약을 파기하고 만주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취했던 이권을 일률적으로 포기한다.” 이 선언은 중국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중공과 북한 신 중국 수립에 기여한 북한 -

   마오쩌둥이 6.25 전쟁이 한창일 무렵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했다는

“우리 두 집안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가 돕고,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도와야 하는 그런 사이다. 지금 조선은 위중지난에 처해 있다. 우리가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는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 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

   이외에도 1958년 평양을 방문한 저우언라이, 1963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 국가 주석 류사오치, 1972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김일성 60회 생일 축하 전문, 70회 생일 축하 전문, 1992년 80회 생일 축하 전문, 2014년 시진핑이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에게 보낸 축하 전문(p.271~276)에서 북한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 까닭은 만주 일대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과 동북민주연군(중국공산당) 간 전투에서 북한은 압록강 인근 초산, 만포, 강계, 후창, 중강진, 나남 등지에 중국공산당의 물자, 무기, 환자, 가족을 피난시키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며, 10만 명이 무장할 수 있는 무기(일본군이 남기고 간)와 탄약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중국공산당(동북민주연군)은 만주에서 장세스의 국민당군을 격파하고 중국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다.      

   

   조선인 정율성(1914~1976)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했다.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한 사람이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사람은 정율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2023년 9월 한국의 정치 진영에서 논란 중] (p.317)       부인 딩쉐쑹은 평양이민공사(동국야전군이 승리할 때까지 북한과 중국공산당의 협력을 주관한 기관) 비서장 역할을 했다.      

   일본 패망 직후, 한반도에는 6만 명에 가까운 화교가 살고 있었다. 그중 2만 명이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일본은 36년간 화교와 조선인을 이간시켰다. 특히 중일전쟁이 본격화된 후에는 조선인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비겁하고, 야비하고, 지저분한 민족이 중국 민족’이라고 각인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전권을 읽어가며, 학창 시절은 냉전기였고, 6.25에 북한을 지원했기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배운 바는 극히 일부분이다. 남과 북이 대치한 현재도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 간의 협조와 비난 전체를 알 수 없다. 역사는 훗날 사실을 드러내 낼 것이다. 멀리 않은 시기에 한반도가 교류하고 통일을 이루면 더 자세한 사실들이 드러나겠지. 나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서 김명호 교수의 책을 통해 과거사 일부를 알게 된 일이 다행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2019.1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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