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면 함께 시간을 보낸 물건들에 정이 쌓임과 동시에, 물건들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추억이 깃들곤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물건이 바로 책인데,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몇몇의 책들은 손에 쥘 때마다 나에게 아련한 추억을 가져다준다.
도서관에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던 어느 학생이 좋아하던 소설책. 수업 시간에 몰래 돌아다니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서 부리나케 책을 고른, 어느 말썽꾸러기의 얇은 시집. 나중에 커서 약초를 캐러 가겠다며 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꿈을 말했던 어느 학생의 식물학 도서. 그리고 한 체격 좋은 운동부 아이가 몇 달 동안이나 빌려 갔던 탓에 반납을 하는 데에 애를 먹었던 두꺼운 스포츠 서적까지.
이제는 그들이 모두 고등학생이 되거나 성인이 되었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책갈피처럼 각각의 책들에 남아 아직까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또 신기한 것은 10년이나 20년이 넘은 책들, 혹은 빛바랜 오래된 고전들 또한 때때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추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당시에 허름했던 학교 도서관의 쿰쿰한 냄새라든지, 함께 책을 읽던 친구들의 앳된 표정들. 그리고 작품 하나를 다 읽은 후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던 나의 모습까지. 책 한 권, 한 권에서 이토록 다양한 형상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책은 또 하나의 타임머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책을 손에 쥐고 내 마음속에 책갈피를 하나씩 던진다. 당장에는 이 모습이 사소하다 느껴지긴 하지만, 이 또한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먼 미래를 살아가던 나를 멈칫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잠잠하던 내 코끝이 시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