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서진 서가

by 그리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쉬는 시간에 도서관 구석에서 장서점검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쿵!'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거기에는 목재로 된 서가 두 개가 부서진 채로 넘어가 있었고, 그 안에 꽂혀있던 수많은 책들 또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서가가 왜 넘어간 것인지 도서관에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몇몇 아이들이 도서관 안에서 장난을 쳤는데, 술래잡기를 하다가 서가에 몸을 부딪혀 그 충격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 때문에 도서관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가를 넘어트린 아이들을 지적하며 놀리는 아이부터, 선생님께 말씀드린다며 교무실을 향해 달려 나가는 아이들까지. 저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던 탓에 학교 건물 자체가 삽시간에 소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몇몇 심성이 착한 아이들은 힘을 모아 넘어진 서가를 바로 세우고, 제자리에 책을 꽂으려 손을 분주히 움직였지만, 서가도 부서진 데다가 책의 양도 많아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나도 함께 달려들어 책을 하나하나 정리했는데, 내부의 소란 때문인지 선생님들께서 빠르게 도서관으로 오셨다.


사고를 친 반의 담임 선생님과 도서관에서 수업이 예정되어 있던 교과목 선생님은 엉망이 되어버린 도서관의 모습에 아연실색하셨다. 그러고는 서가를 넘어트린 아이들을 불러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이후 선생님은 나에게 와서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시며, 필요한 경우 서가를 다시 구매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고를 친 아이들은 선생님의 뒤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얼추 책장의 정리가 끝나자 나는 행정실로 가서 서가가 부서진 것과 관련하여 파손 규정이 있는지 여쭈어봤다. 그리고 혹시 가능한 경우 서가의 수리를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행정실 직원분들은 팔짱을 끼고 '흠..' 하며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시설 관련 주무관님을 호출하셨다.


시설 주무관님은 도서관으로 오셔서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면서 혀를 끌끌 차셨다. 그리고는 부서진 서가를 이곳저곳 살펴보셨다. 나는 새로 구매를 해야 하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는데, 주무관님은 씩 웃으시면서 "남은 판자 덧대어서 고치면 될 것 같아요."라고 희망적인 답변을 주셨다.


나는 목공실로 가시는 주무관님께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교과목 선생님께로 가서, 서가를 고쳐주신다고 하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후 서가 정리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간식을 하나씩 쥐어주며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곤 먼발치에 서서 얼굴 가득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사고를 친 아이들을 따로 불렀다.


아이들은 나의 호출에 흠칫 놀랐으나 이내 90도에 가깝게 고개를 푹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했다. 나는 딱히 화를 낼 생각이 없었음에도 그 아이들은 혹시나 혼이 날까 봐 필요 이상으로 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자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서 많이 놀랬지? 그런데 그렇게 너무 죄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문채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지금 너희 입장에서는 서가가 넘어간 게 정말 큰 일이지만, 너희 인생 전체에서 보면 이건 정말 작은 일에 불과해. 우리가 감기 걸리기 전에 예방 주사를 맞듯이, 이번 일도 그냥 따끔한 예방 주사 한 방 맞았다고 생각하고 넘기면 돼. 그리고 오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을 앞으로 잘 간직하면 그걸로 충분해."


아이들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아이가 있어서 "괜찮다."며 가볍게 주먹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에게도 간식을 하나씩 손에 꼭 쥐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어릴 땐 다 그렇게 놀았어. 어차피 지금 서가도 다시 정리 됐겠다, 나도 이 일로 더 이상 너희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진다거나 시선을 가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도 더 이상 마음 쓰지 말고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면서 도서관에 자주 놀러 와. 알겠지?"


아이들은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중 한 학생은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라며 또 한 번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이 무언가 먹먹하고 기특해서 엄지를 '척'하고 뻗었다.


서가가 수리되고 난 이후 나는 다시금 그 자리에 책을 꽂았는데, 이상하게도 책들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이 홀가분한 상태였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 연연 했으면 지금과 달리 오히려 내 하루가 더 불편했을 거라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생기는 도서관의 고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