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임이 쪼잔함이 되지 않으려면

by 그리다

오늘도 사람들이 얽혀서 살아가는 세상은 무척이나 시끌벅적하다. 그중에서도 특정의 사람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를 오래 공유하는 직장에서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특히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른 부서 사람들의 일을 하는 성격. 특정 직책의 인물이 가지는 업무 처리 습관. 또는 개인의 식생활이나 옷차림 등등, 서로 관련이 되어 있거나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서로가 서로의 입방아에 올라 건물 이곳저곳을 수다스러움으로 채운다. 나는 이 중에서도 인물의 행동과 관련된 부분을 사람마다 해석하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는데, 이번 글에서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한 사람의 행동 패턴은 대개 그 사람이 살면서 겪어온 경험이나 습관에서 비롯되곤 한다. 하지만 보통 현대인들은 타인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기에, 간단히 자신의 기준을 토대로 그 사람이 가진 행동이 외향적인 느낌인지 아니면 내향적인 느낌인지로 나누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식사를 하고 난 뒤 인파가 모인 공간에서 스스럼없이 트림을 하는 사람의 경우,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기준이 세워짐과 동시에 위생적인 부분에서 조심성이 부족한 인물이라 판단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은 모두가 익히 알다시피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방하다.", "살갑다.", "활기차다.", "낙관적이다.", "유머스럽다." 등의 평가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외향적인 사람이 가진 밝은 에너지가 타인마저 환하게 비추어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향적인 성격의 경우 "진중하다.", "조용하다.", "섬세하다.", "집중력이 있다." 등의 평가를 받을 때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가진 조용한 통찰력과 거기로부터 시작되는 정보의 분석이 결국 최선의 행동으로 이어져 타인에게 잔잔한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성격들을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어떻게 될까? 부정적인 시선으로 돌려서 그 두 가지 성격을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의 경우 "산만하다.", "오지랖이 넓다.", "시끄럽다." 등의 악평이 있을 것이고, 내향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답답하다.", "음흉하다.", "속을 알 수가 없다."라는 평가로 전환될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진 성격과 습관은 동일할 텐데 어째서 이렇게 손바닥을 뒤집듯 다르게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행동이 타인에게 전달될 때 공격성을 띠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최근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과장에게 휴가를 주는 팀장은 과장의 입장에서는 참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그 과장이 해야 될 일을 갑자기 다량으로 떠맡게 된 대리에게는 팀장이 미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정이 있어서 부탁을 좀 할게요."라는 점잖은 말투로 팀장이 일을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대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업무가 더해져 과도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들은 특정한 계층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고르게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자신이 시킨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가를 쓰는 사원에게 눈치를 주는 상사. 정해진 출근 시간이 있음에도 자주 지각을 하며 철면피를 고수하는 아르바이트생. 옆집에서 들리게 될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방가를 지르는 이기적인 이웃들까지. 자신의 기준에서는 정당한 행동이라 여기지만 타인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공격성으로 여겨지기에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습관을 가졌다고 한들, 이것은 안 좋은 평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내성적임이 쪼잔함이 되지 않으려면 내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공격성을 스스로 줄여야 한다는 것. (이는 외향적인 사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본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 유독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이 있더라도 같이 맞불을 놓아버린다면, 함께 있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똑같이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런 순간이 생긴다면 조금 더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이후의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가진 성격은 결국 자신이 하는 행동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평가를 받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매 순간 자기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직적인 관계라면 상대방의 요구는 무엇인지와 나 자신이 해야 할 소임은 충분히 다 이루었는지를. 수평적인 관계라면 자신의 성향이나 행동이 무례하거나 상대방에게 강요하듯 떠넘겨지지 않았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군보다는 적군을 덜 만드는 것이 인생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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