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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

by 그리다

그날도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던 평온한 산책길. 나는 주변을 걷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조용히 나의 갈 길을 가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강아지들 때문에 싸우는 어른들의 모습. 타인이 다투는 모습을 그리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나지만, 의도하지 않게 가장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보았기에 가볍게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전개는 이러했다. 강아지의 주인인 두 사람은 각각 중년 정도로 보이는 여성으로, 자신의 강아지와 함께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A 아주머니의 강아지는 흰색의 털을, B 아주머니의 강아지는 갈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둘 다 정강이 높이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강아지들이었다.


두 사람이 교차하던 순간, 보통 강아지들이 그러하듯 A 아주머니의 강아지가 먼저 꼬리를 흔들며 B 아주머니의 강아지에게로 달려갔다. 이내 두 강아지는 약간 경계를 하면서 서로의 냄새를 맡았고, 서로를 인지하는 듯 몸을 비볐다. 굳이 특별할 게 없는 강아지들의 인사. 나는 평범한 모습이구나 싶어 고개를 돌리려고 했는데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강아지에게 다른 강아지가 온 줄 몰랐던 B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의 강아지 옆에 낯선 강아지가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A 아주머니의 강아지에게 발길질을 한 것이다. 다행히 강아지는 발에 맞지 않았지만 그 강아지는 처음 맞이하게 된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두세 걸음 물러났다.


자신의 강아지가 다칠뻔한 모습에 A 아주머니는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B 아주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B 아주머니는 자신의 개를 물려고 하는 모습에 놀라서 그랬다며 맞섰다. 다시 A 아주머니는 물기는 뭘 무냐면서, 이게 어떻게 물려고 하는 모습이냐라며 소리쳤고, B 아주머니는 안무는 개가 어디 있냐면서 맞받아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그만 강아지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렇게 발길질을 하냐", "과장하지 마라 세게 차지 않았다. 그냥 겁만 줄 정도로 살짝 휘둘렀을 뿐이다."라면서 옥신각신했고, 이후 나오는 언어들은 다양했지만 결국 "당신의 발에 내 강아지가 다쳤으면 책임질 거냐?"와 "당신의 개가 내 개를 물었으면 책임질 거냐?"라는 말로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말싸움을 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서로에게 소리만 지르고 있는 상황. 갑자기 들리는 고성에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싸움이 일어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지를 궁금해했다. 대부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싸우고 있는 두 사람 옆을 지나가던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두 분은 "그놈의 개 때문에 사람이 싸우고 있네."라며 혀를 끌끌 찼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던 탓일까? B 아주머니는 씩씩거리며 "됐고, 그냥 갈 길 가세요."라며 휙 돌아섰다. 이에 A 아주머니는 분이 안 풀렸던 것인지 "저런 X은 다리를 부러트려 놔야 한다."라고 소리쳤고, 이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B 아주머니는 "말을 뭐 그따위로 하냐? 한 번 해봐라. 부러트려봐라."라면서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반말과 욕설로 계속되는 싸움. 두 마리의 강아지들은 자신의 주인이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과 대비되듯, 그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보기 싫어서 서둘러 그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한참을 멀어질 때까지 등 뒤에서는 계속 두 사람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고, 멀리서도 이 상황이 보이는 듯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왜 저러냐?"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게 느껴졌다.


반려동물을 점점 더 많이 키우게 되는 요즘의 사회. 나는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가 가족이 되고, 그 삶에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긍정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나가던 할머니의 말씀처럼 반려동물로 인해서 사람과 사이에 불필요한 싸움이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것과, 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서로 간의 어떤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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