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15년의 어느 여름날, 나는 대전의 어느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업무와 관련된 일들 때문에 몇 달간 대전에 머물렀었는데,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가기에는 시간도 애매하다는 생각에 그냥 대전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전날 밤 대전 토박이였던 두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적당한 여행지를 체크하여 길을 나서니, 여행을 한다는 마음 덕분인지 하늘은 푸르고 발걸음은 한층 더 상쾌했다. 하지만 계절이 여름이라 그런지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가 거리에 가득 울리는 거리를 10분 남짓 걸으니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날씨가 덥기도 하고 목도 말라 온 탓에 잠시 쉬어갈 곳을 찾고 있는데 마침 눈앞에 편의점을 알리는 푸른색 간판이 보였다. 나는 더 걸어가도 편의점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에 들러 스포츠음료를 하나 구매했다. 그리고는 곧장 길을 나서려는데, 10m 정도 앞에서 30대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하는데, 그들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금류처럼 나에게 시선을 계속 고정한 상태로 나와 가까워졌다. '뭐지?' 하는 마음으로 잠시 멈칫하였는데, 그들은 대뜸 대전의 랜드마크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전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길을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그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그들이 물은 곳의 위치를 하나하나 확인해 주며 "찾으시는 장소는 저쪽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라고 말한 뒤돌아서는데, 무언가 용건이 남은 것인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대뜸 이상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낯빛이 조금 어두워 보이는데
혹시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으신가요?"
나는 그 물음을 들은 뒤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순간 '아.. 미친.'이라는 절규의 말을 떠올렸다. 친구들에게 도시 곳곳에 이상한 종교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기는 들었지만 설마 내가 마주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사이비들을 위해 친절을 베풀었던 건가?' 하는 배신감 때문에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그 이후에는 내가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하는 것이 없었는데도 자기들끼리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나의 인생을 멋대로 예측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레퍼토리가 있는 것인지 주절주절 무언가를 말해가기 시작하는 두 사람. 내가 심드렁하게 있으니, 그들은 창을 하는 사람과 북을 치는 고수처럼 자기네들끼리 얼씨구 추임새를 넣으며 점점 목소리를 높여갔다.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대충 "원하는 게 있는데 무언가 잘 안 풀리지 않냐?", "혹시 집에 어르신들이 계시냐?"이런 말들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시다고 하니 "일이 안 풀리는 건 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그런 거다".라는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이후 그들은 기본 제사 비용은 얼마고, 조상님으로부터 제대로 공덕을 받으려면 얼마를 더 추가하면 된다는 등. 거의 10분이 넘게 저잣거리에서 약을 파는 장사치처럼 나를 꼬드기려고 했다. 나름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는데도 계속 시간을 끌고 있는 그들에게 슬슬 짜증이 나기도 했고, 더 들어주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관심 없다 말하며 매몰차게 돌아서려는 찰나. 그 사람들은 나를 붙잡을 비장의 수라고 생각했겠지만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내 가족을 건들고야 말았다.
"혹시 집에 어머니, 아버지는 건강하신가요? 형제나 자매는 몇 분이나 되시죠?"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끌어 올랐다. 지금껏 충분히 무례했음에도 그들은 왜 만족하지 않고, 멀쩡한 내 가족까지 들먹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마음으로 절대영도에 가까운 차가운 눈빛을 그들을 향해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계속 가족에 대한 질문을 해왔고, 나는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하는가 싶은 마음으로 탈룰라 전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아버지께서는 뭐 하시죠?"
"돌아가셨는데요?" [이건 진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어머니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죠?"
"(먼 산을 바라보며) 아이고.. (절레절레)" [건강하게 살아계심]
"그럼 혹시 형제나 자매가 있으신가요?"
"(깊은 한숨) 하아.. 형이 있었는데요. 그게.. (절레절레) "
[신체 건강한 소방관.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음.]
"어.. 그럼 저기.."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불청객들.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그들에게 외쳤다.
"왜 자꾸 가족을 들먹여서 아픈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겁니까? 진짜 기분 나쁘네요. 더 이상은 말 걸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 말을 뱉은 직후 등을 돌려 그들로부터 빠르게 멀어졌고, 그들은 내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하릴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짙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인류애의 일부분을 싹둑 잘라버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누군가 길을 물어오면 친절하게 안내를 했지만 이후부터는 일단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싸한 느낌으로 다가오면 일부러 거리를 두고 빠르게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주거지 주변에서 간혹 보이는 사이비 종교 전도자들. 그들은 매번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근심을 덜어주겠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