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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채워가는 도서관

by 그리다

청소년기에는 에너지도 넘치고 생각도 많아지다 보니 학생들마다 무언가를 도전하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공부하기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거나 특기를 개발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학원에서 코딩을 배웠다며 자랑하는 아이. 구기종목이나 체육활동을 잘한다며 뽐내는 아이. 나아가 악기 연주나 글쓰기, 미술, 영상 편집 등에 관한 지식을 이야기를 하는 아이까지. 아이들은 저마다 도서관으로 찾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내게 말해주거나 결과물을 직접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거릴 때가 많았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기가 아이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다 건전한 자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응대하는 나의 자세 또한 그 못지않게 반듯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지켜본 결과, 아이들의 자존감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요소나 큰 가르침 같은 것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자신의 생각이나 취미들을 경청하고 이를 존중해주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는 "그 공식도 아는 거야? 대단하네."라는 말을. 어려운 책을 읽는 아이에게는 "그 책은 어른들도 난해해하는 책인데, 읽어보려 한다니 멋지네."라는 말을. 그림을 그리는 아이에게는 "선 긋기나 특징을 살리는 능력이 진짜 훌륭한데?"라고 말해주는 등 각각의 아이에게 맞는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아이들은 이를 발판 삼아 더욱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두했고 그런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매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는 한편, 내가 만약 권위적인 어른들과 같은 딱딱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했더라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했을까를 상상했다. 내가 어른이니까 너보다 많이 안다는 식으로 대하거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등의 태도로 아이들을 대했다면 분명 아이들은 어른을 싫어하게 되었을 것이고,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도 빠르게 흥미를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자 나는 무언가 번뜩하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아이들이 건전한 자존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는 과정이 중요하며,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도 아이들이 도서실에 와서 자랑할만한 이야기를 꺼내고 즐겁게 떠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가벼운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이 지금처럼 편하게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소박한 공간 안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자존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무거운 것은 내려놓고, 허전한 것은 채워가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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