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사진전이 열리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해당 사진전의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온라인상에서 홍보도 많이 되었고, 그 때문에 1만 원이 넘어가는 티켓의 가격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웬만한 날짜의 티켓은 매진되기 일쑤였던 탓에 나는 날짜와 시간대를 조정하기에 이르렀고, 사진전이 오픈을 하는 시간에 방문하여 간신히 작가의 사진전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해당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문 가까이에서부터 20미터 가까이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있던 복도의 반대편에는 프리미엄 티켓이 따로 있었던 것인지 별도의 입장을 위한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으나 좀처럼 그쪽으로는 사람이 잘 입장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서있는 쪽에 모여 자신의 순번을 기다렸다.
20여 분 가까이 길어지는 대기시간. 퍽 지루한 느낌이 있어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줄을 선 사람들의 대다수가 여성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대는 청소년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고, 저마다 사진전의 책자나 인터넷상의 홍보 사진들을 보며 떠들고 있었다. 드물게 어린아이나 남성분들도 계셨으나 이들은 가족 혹은 커플 단위로 묶여 입장하는 사람들일 뿐, 단독으로 와서 입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입장 티켓을 구매한 뒤 입장하게 된 사진전 공간. 작은 암막 커튼을 열고 맞이하게 된 미지의 공간은 신비로움의 연속이었다. 관람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과도하게 동선을 늘린다거나 하는 느낌의 공간은 없었고 각각의 사진들이 가지는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공간의 활용이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여행을 갈 때도 그렇지만, 나는 사진전에 방문하기 전 간단한 공부를 하고 갔다. 해당 작가는 어떤 사진을 주로 찍는지, 또 어떤 독특함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선사하는지 등을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사진전에서 쓰게 되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나아가 이렇게 준비를 하는 것이 작가에 대한 존중이자 해당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연출자의 고민이 깊게 들어갔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고 적절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해변가 사진을 모아둔 공간에는 파도가 몰아치는 느낌이 나도록 바닥과 벽의 색상이 시원한 무늬로 되어있었고, 도시나 건물을 찍은 사진이 모인 공간에서는 온전히 사진의 색감과 구도를 즐길 수 있도록 백색의 벽과 함께 적절한 눈높이에 작품들을 전시해 놓기도 했었다. 때때로 바닥에 모래가 있어서 사막을 걷는 느낌을 준다거나 붉은 조명으로 마치 지중해의 어느 국가에 온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사진전이 생소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이런 들뜬 분위기를 살려 차분히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작가가 왜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고민을 하는 시간이 재미있었고, 이 한 컷의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기울였을 수고를 생각하다 보면, 마치 작가와 함께 그 장소에 서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전부 둘러보면 족히 30분에서 1시간이 걸릴만하겠구나 싶었던 뜻깊은 사진전. 하지만 나는 얼마 못 가 그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그 이유인즉, 주변을 둘러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듯, 사진이 잘 나올만한 곳 앞에서 몇 번의 인증샷을 찍은 후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작품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관심을 두는 다른 작품을 먼저 보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기획 공간에서도 그 사람들은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사진전과는 거의 연관이 없는 예쁜 장식소품이나 빈 벽 앞에서 사진을 찍기 바빴고, 그렇게 대충 몇 번의 사진을 남긴 뒤에는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다른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라?' 작품의 절반도 채 감상하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정석은 없고 그런 행동 또한 하나의 관람 방법이겠거니 하며 이해를 하려 했으나 무언가 가슴속에 드는 의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전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사진전을 연 작가에게 중점을 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진전에 와있는 나'를 뽐내기 위해 이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행태에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슬쩍 새어 나왔다.
이런 생각은 끄트머리에 갈수록 더 짙어졌다. 출구를 안내하는 팻말이 보여 마지막 작품들이 있는 공간으로 가니 처음 입장할 때처럼 사람들이 뱀처럼 길게 줄을 서있는 것이 보였다. 왜 출구 앞이 이렇게 부산스러운 것인지 궁금해져 시선으로 쫓으니, 그곳에는 널따란 벽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대표 작품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인터넷과 팸플릿, SNS 상에서 작가의 사진전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보였던 작품. 사람들은 해당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이었고, 자신의 순번이 오기를 기다리며 저마다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다가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거기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작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또 줄을 서는 사람들이 관람로까지 차지해 버려, 그저 줄을 서기 위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수많은 작품들이 안타까워 보인 탓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줄을 서지 않으면 대표작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늦어질까 봐 너도나도 줄을 서는 곳으로 달려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사진을 찍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길고 길었던 관람을 마치고 로비로 빠져나오는 길.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으니 무언가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벼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연히 보게 된 사진전이었지만 앞으로 다른 행사에 가게 된다면 이런 식의 관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단순히 온라인상의 홍보와 입소문만을 가지고 작가와 작품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끌림을 가지고 가야만이 더 의미 있고 알찬 관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곳을 방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나와 작가가 주고받는 조용한 교감이 조금 더 깊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