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러시아)
이튿날 아침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인 중앙광장을 방문했다. '혁명전사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평소에는 일반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고, 국경일에는 별도의 행사로 북적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전날 내린 눈으로 인해서 바닥이 젖어있었는데, 하늘도 흐려서 그런지 무언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동상을 기준으로 광장의 오른쪽에는 'spaso-Preobrazhensky' 성당이 공사 중에 있었는데, 전해 들은 바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무척이나 오랫동안 지어지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입장이 불가했지만 글을 쓰는 현재(2025년 9월)에는 내부 진입도 가능하게 되었는데, 외벽공사는 끝났지만 내부에서 계속 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완벽하게 지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듯하다.
중앙광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이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갔다. 역은 중앙광장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건물들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어서 그런지 외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 중에 하나였다.
역사 플랫폼을 보면 공항열차, 통근열차 등 노선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마침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정차해 있어서 시선을 이끌었다. 해당 플랫폼에는 오래된 기관차 모형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종점 기념비'가 놓여있었는데, 횡단 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엘렉트리치카'라고 하는 단거리 통근열차에 탑승을 했다. 열차 내부는 무언가 새로웠는데, 근대 역사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열차처럼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양옆으로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놓여있었다.
이후 '우골나야'역에서 하차 후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우수리스크'로 향했는데, 호남지역에서 볼만한 드넓은 평야 위로 한 두 채의 집만이 지어진 풍경을 보며, 이곳의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위해 잠시 버스에서 내린 뒤 둘러본 주변 풍경은 오가는 차들도 우리나라에 비교해서 적고, 인파도 한적해서 마치 외국 드라마 속에 들어온 듯 나에게 흥미로움을 주었다.
우수리스크에 들어서서는 곧장 고려인 역사관 (고려인 문화센터)으로 향했다. 이곳은 1860년대부터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역사관 내부에는 당시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그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역사관 외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있었는데, 그중 안중근 의사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무척 눈에 띄었다.
비석 아래에 쓰인 내용을 읽고 있다가 우연히 이 비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는데, 해당 비석이 새겨질 당시 조각가가 안중근 의사의 이 '의사'라는 단어를 질병을 고치는 직업인 'Doctor'로 오해하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서야 이를 '의로운 지사'로 바로 알고 고쳤다고 한다.
이후에는 차량으로 10분가량을 이동하여,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있어 큰 영향력을 미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과거 거주지로 갔다.
이곳은 두 개의 건물이 각각 나뉘어, 본 건물은 최재형 선생과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관람실로 꾸며져 있었고, 옆 건물은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 최재형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위해서 노력했던 많은 업적들,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같은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읽어볼 수 있다.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고 난 이후에는 다시금 10분여를 이동해 우수리스크시의 외곽으로 갔다. 그곳에는 주변으로 보이는 황량한 벌판 위로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마련되어 있었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 특사로 발탁되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연해주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힘쓰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17년에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순국하였다.
이상설 선생은 임종 전에 광복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몸과 유품들을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리라고 하였는데, 화장 후 그 유해를 뿌린 곳이 바로 이 유허비의 뒤에 있는 수이푼 강(러시아어: 라즈돌나야 강)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조금 더 외곽지역으로 이동하여 발해 성터를 구경했다. 성터가 있는 곳 아주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왜 이곳에 성을 지었는지 이해가 될 만큼 주변 평야는 무척이나 광활했다.
과거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이 드넓은 땅을 달렸을 것을 생각하니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이제는 이렇게 외국의 땅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시금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올 때는 버스로 왔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이때 오늘의 일과를 떠올리며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연해주 이곳저곳에 남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무척이나 훌륭한 여행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