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지 3주 차가 되는 날. 일수로 따지면 15일을 보냈기에 이제는 제주도의 풍경이 익숙해졌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애꿎은 시간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처럼 나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제주도를 느긋하게 즐기기로 했다.
3주 차의 첫 째날은 느긋하게 두 시간 정도를 걸어 이호테우 해수욕장을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이 날은 월요일인 데다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시간이 조금 더 깊어지자 해변에는 밝게 불이 밝혀졌다. 그날은 운이 좋게도 이호테우에 해변 포차가 개장을 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다채로운 해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이야깃소리로 해변은 생기가 넘쳤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한 포차에서 한치회를 포장해 와서 먹었는데, 감칠맛이 상당하고 쫄깃한 식감도 너무 좋았다.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에는 숙소를 하루정도 떠나보기로 했다. 나는 제주도의 동쪽인 온평리 부근에 하루를 묵을 숙소를 예약하고, 자동차를 빌려 제주공항에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제주도를 일주하기 시작했다.
이날에는 비가 쏟아졌다 그치기를 반복했는데, 처음으로 비를 비하고자 간 곳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이었다. 그곳에서 각 나라의 민속물품이 전시된 박물관을 구경했고, 비가 그친 이후에는 계단 위로 올라가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월드컵 경기장을 구경했다.
사실 나는 축구를 잘 모르기에 축구 경기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넓은 경기장을 관람해 보니 그 크기에 한 번 놀라게 되었고, 빈 관중석에서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사뭇 설레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서귀포 경기장을 본 이후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늦은 시간이 다 되어서야 온평리 숙소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1박을 하다 보니 무언가 두근거리기도 했고, 마냥 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숙소를 빠져나와 가볍게 마을을 걸었다.
마을의 골목들은 인파가 적어 한산했고, 가로등 불빛은 은은해서 나에게 여유를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이어 도착한 해변가에서는 성산일출봉(세 번째 사진 왼쪽 부근)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자리한 그 자태가 참 신비하고 놀라웠다. 고개를 조금 돌리니 바닷바람과 함께 저 멀리서 한치잡이 배들이 빛으로 바다를 수놓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빛이 보석 같아서 참 오묘하고 좋았다.
다음날 나는 숙소를 정리한 뒤 차량반납을 할 겸, 제주도의 내륙 쪽을 가로질렀다. 주변에는 풍력발전기가 푸른 하늘 아래서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후 나는 1박 2일 동안 숙소에 틀어박혀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첫 책을 집필했다. 사실 집필보다는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 발간하는 수준에 가까웠기에, 초고를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출판 양식에 맞게 파일을 수정하고, 오탈자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최종본이 완성된 이후에는 진이 빠져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