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계절이 왔다. 겨울은 여름처럼 다채롭지는 않지만, 단순한 색깔로 고요하게 빛나는 것이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계절에는 다양한 행복들이 숨어있는데, 나는 오직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와 이것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겨울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목욕탕이다. 겨울이 오면, 나는 별빛도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편한 점퍼를 걸친 후에 간단한 목욕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선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새벽 공기는 발과 손끝을 아리게 할 정도로 차갑지만, 오히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들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몸이 차가워질수록 목욕탕에서 맞이하는 행복은 커진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목욕탕은 크고 좋은 곳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내가 향하는 곳은 오직 가깝고, 오래된 동네의 목욕탕. 그 허름한 장소에 가야지만 온전한 겨울의 설렘을 맛볼 수 있다. '목욕탕'이라고 쓰인 간판이 흐리게 빛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뒤통수가 튀어나온 낡은 브라운관 TV가 소리를 내며 나를 반긴다. 이후 아무도 없는 목욕탕 내부로 걸음을 내디뎌 온탕에 몸을 담그면, 천국에 온듯한 포근함이 온몸을 감싼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공간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사람이 세명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좁디좁은 사우나실에서 극한의 뜨거움을 맛보고 나면, 몸에서는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다른 손님이 올 때까지 충분히 목욕탕을 즐기는데, 몸에 묵은 때를 깔끔하게 벗긴 이후에는 다음 행복을 위해 걸음을 옮긴다.
목욕탕을 나와서는 잠깐의 쉼표로,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사 마신다. 대표적으로 찾는 것은 단지 우유라 불리는 '바나나맛 우유'와 '솔의 눈'이라는 캔 음료로,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와서 그런지 목욕 후에 마시는 음료에서는 상큼함과 단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곤 한다.
음료로 목을 축인 뒤 향하는 곳은 김밥집이다. 요즘 웬만한 식당은 9시나 10시 즈음에 문을 열지만, 간혹 오래된 김밥집은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나는 메뉴판에 적힌 수많은 메뉴들 중에서 꼭 국물이 있는 음식을 시키는데, 보통은 우동이나 국수를 주로 주문하는 편이다.
식사가 나온 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들고, 꾸밈없는 담백한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그 짜르르 한 느낌은, 겨울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실감 나게 해 준다.
음식을 음미하면서 통유리로 된 창을 보고 있으면 안과 밖의 온도 차이로 인해 김이 서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나는, 차가움에 속해 있던 내가 얇은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마음 또한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감성이자 아늑함이라는 생각에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에는 비스듬히 떠오른 태양을 보면서 잠시 길을 걷는다. 인도 위에는 건물들의 높낮이로 인해 그림자의 길이가 피아노 건반처럼 제각각인데, 그 때문에 걸음걸음마다 차가움과 따스함이 반복되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때 스치는, 순간의 온기가 참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모습이 길거리에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하면 붕어빵 마차도 천천히 영업을 시작한다. 겨울 하면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붕어빵이 생각나는데, 나는 붕어빵 파는 곳을 미리 체크해 두는 성격이라 익숙하게 걸음을 옮긴다.
붕어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께 드리기 위해 붕어빵을 천 원치 사니, 붕어빵을 파시는 할머니께서 버스를 기다리며 먹으라고 하나를 더 챙겨주신 적이 있다. 나는 붕어빵을 먹을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는데, 매년 나를 붕어빵 마차 앞으로 이끄는 힘은 아마도 그날의 따스함과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추억을 사 먹는다는 느낌으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면, 가득 들어있는 달콤한 팥과 바삭한 빵이 혀끝에서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질감은 일반적인 빵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라 그런지 행복함이 두 배로 다가온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맛집이나 인파가 붐비는 곳으로 갈 때, 나는 유유히 집으로 돌아간다. 이를 닦으면서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보면 미리 켜두고 나갔던 전기장판의 따스함이 나를 반기는데, 이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행복감도 참 소소하고 좋다.
이어서 시작되는 집 안에서의 일과는 단순하다. 두꺼운 이불에 쌓인 채 한동안 뭉그적거리다가 귤을 까먹기도 하고, 미뤄둔 영화를 보거나 내가 좋아하는 분류의 유튜브를 보면서 하루를 채워 나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배고픔이 찾아오는데, 무엇을 먹어야겠다는 욕구보다는 그냥 누워있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해서, 보통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식사를 챙겨 먹는다. 그렇게 정적인 행복과 여유로움을 가득 채우고 나면 내일 있을 일정들을 미리 준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나열한 겨울의 행복은 반경 1km 이내에서 모두 이룰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소박하다. 그래서 그런지 행복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물론 이것이 누군가가 보기에는 게으르고 어설프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행복'이란 타인이 만들어주거나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직 나만이 발견할 수 있고, 나만이 채워나갈 수 있는 행복. 그것은 겨울날의 행복처럼,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