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앞에서의 사색

by 그리다

왕복 2차로 정도의 짧은 도로 앞에 서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항상 똑같은 풍경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보행자 신호가 아직 빨간불임에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로를 횡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앞만 보며 달려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행위가 무색하다 느껴질 만큼, 초록불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단횡단을 했기에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가 많이 차이가 나야 하는데, 막상 길을 걷다 보면 금방 그 사람의 등을 볼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여러 번 겪게 되면서 가벼운 사색을 하게 되었다.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의 차이는 이처럼 고작 몇 초를 더 기다리느냐 마느냐에서 비롯된다는 것. 또 옳지 못한 일로 앞서 나가더라도 그 차이는 얼마 가지 못해 따라 잡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다 보면 질서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윤택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룬 것처럼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것 또한 볼 때도 있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겪었던 일들을 통해 그런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돌이켜 보며 조용히 반성해 본다. 약간의 앞섬을 위해서 보잘것없는 불의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나아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단순히 편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쉬이 바꿔서는 안 된다고.


오늘은 같은 자리에 서 있으니,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도 나를 보면서 천천히 신호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사람 덕분에, 은근슬쩍 무단횡단을 하려던 사람도 그 옆에 서서 함께 신호를 기다린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나의 생각은 더 확고해지는 듯하다. 결국은 내가 먼저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올바른 행동들이 서로의 마음에 쌓여,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바꾸어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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