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가 내린 지 약 일주일. 창틀에는 먼지가 쌓여있다. 청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관심을 잠깐 껐더니 그 사이 먼지가 쌓이고 만다. 그러고 보면 이 먼지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언제나 먼지가 쌓이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미루지 않는 성격이라 바로 청소기의 전원을 켠다. 창틀을 기점으로 자주 걸어 다니는 마루부터 신경 쓰지 못한 공간들까지 하나하나 청소를 해간다. 그러다 서재로 쓰고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는데 읽지 않은 책과 사진첩에도 먼지가 쌓여있다. 그저 종이 위에 먼지가 쌓인 모습이지만 한때나마 내가 사랑했었던 것들이었는데, 이토록 신경 쓰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고 보면 저 책과 사진 위에 남은 먼지들처럼 기억에도 먼지가 쌓이는 것 같다. 행복에서 시작된 마음도, 아픔에서 시작된 미련도 모두 시간이 흐르니 먼지가 쌓인다. 그리고 조금씩 잊어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사진을 보면 그때의 소중했던 기억들이 어제처럼 떠오르는데, 이걸 잊으면서 살아갈 수 있구나 싶다. 지금도 즐겁게 읽었던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 '그래 이때 나는 주인공이 된 듯했어'라고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이 마음을 잊고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바쁘게 살았던 탓일까. 아니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고 나의 시간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답은 정해져 있지만 모른 척 고개를 숙일뿐이다.
그렇게 길었던 청소가 끝났다. 구석구석 먼지를 쓸고 쓰레기를 주었더니 꽤 들어봄직한 양의 쓰레기가 나왔다. 내 빈 공간을 채웠던 무언가 들이지만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대로, 캔은 캔대로 특징이 뚜렷한 것들끼리 모아 잘 분류해야 한다. 이래야 나중에 재활용을 하거나 태워버리기 쉬우니까.
분류가 끝난 쓰레기들을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모조리 비워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남은 감정들도 이렇게 분리수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채우는 것이 중요한 만큼 무언가를 비우는 일도 참 중요하다. 그리고 그냥 아무렇게나 비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채우게 되거나 완전히 지워버리기 위해서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저마다의 공통점을 가진 감정들끼리 나누어서 버려야 한다. 기억을 버리는 일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잠깐의 쉼표를 끝으로 비워내었다는 후련한 마음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본다. 내 발은 쓰레기장 옆에 있지만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