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 선생

by 그리다
king-sejong-the-great-1414289_1920.jpg

오래전에 썼던 일기를 보다가 '아!' 하고 탄식을 지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일기 속에 오래전에 나에게 온라인상의 대화 예절을 알려줬던 친구 'ㅋ 선생'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풋풋했지만 어찌 보면 참 어리숙했던 과거. 그때의 나와 친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2010년도에 처음 스마트폰이 출시되었을 때는 스마트폰은 부유한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았다. 기존의 폴더폰들과는 다르게 화면도 크고 컴퓨터처럼 인터넷의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한 두 명씩 자랑하듯 스마트폰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나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핸드폰은 그저 연락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이제는 스마트폰이 당연한 액세서리가 되어있는 사회에서 나는 등 떠밀리듯 낡은 폰을 버리고 새로운 스마트폰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문자에 익숙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으로 카카오톡을 사용해보니 자주 뜨는 알람 때문에 너무 부산스러웠다. 5년 간 사용했던 핸드폰에 남은 정 때문도 있었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이런 이유에서 조금 싫어했다. 개인적인 시간에 몰두하고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나에게 끝없이 밀려오는 텍스트는 지옥과도 같았다. 애초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비교적 진지하고 짧게 문자를 주고받았던 습관은 카톡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하나의 사건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ㅋ 선생'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장교 후보생 시절, 나와 동기들은 강의실 2개 크기의 넓은 공간을 사물함으로 나누어 각각 1반 2반 형태로 생활관을 나누어 썼다. 매일 해가 뜨는 아침마다 과할 정도의 체력 단련을 하고 나면 수업이 시작하는 9시쯤에는 파김치가 되어있는 게 일상이었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체력 단련 후 샤워를 하고 한계에 다다른 몸을 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다행히 아침에 수업이 없어서 생활관 중앙에 누워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는데, 반대편 생활관에 있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중에 점심 먹으러 가자 ㅋㅋㅋㅋ'

나는 고작 몇 걸음 떨어져 있는데 그냥 말로 하지 뭔 카톡을 보내나 싶은 마음에 간단히 답장을 했다.

'알겠다. ㅋ'

카톡이 보내지고 약 4초가 지났을까? 반대편 생활관에서 친구가 호령을 하듯 커다란 목소리로 나를 호출했다.

"야!! 뭔데 이거? 장난하나?"

"왜? 뭐?"

"아.. 진짜.. 일단 내 자리로 와봐"

"왜??"

"아! 빨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친구가 있는 옆 생활관으로 갔다. 물음표를 가득 머금은 나의 눈을 보는 순간 친구는 순간 웃더니 잠시 앉아보라 했다. 그리고 서로를 보고 마주 앉은 상태에서 서로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내가 보낸 카톡의 화면을 보여주더니 조곤조곤 문제점을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니 혹시 오늘 기분 나쁜 일 있나?"

"아니, 전혀. 오전에 수업 없어서 오히려 기분 좋지."

"그럼 뭐 지금 내한테 정색할 일 있나?"

"그럴 리가. 점심 먹을 생각에 기분 좋은데 왜?"

"근데 왜 'ㅋ'을 하나만 붙이는데?"


나는 핸드폰 화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화 뒤에 'ㅋ'을 하나만 붙이는 건 나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관례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일. 막 웃기거나 조롱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ㅋ'을 간단하게 하나만 붙인 것이었는데, 친구는 자신의 폰을 보여주며 내가 보낸 카톡의 문제점을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자 봐봐. 내 카톡 화면 보면 알듯이 보통은 항상 'ㅋ'을 두 개 붙이는 게 상식이다."

"그리 막 웃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왜 꼭 두 개를 붙여?"

"자세한 건 모른다 나도. 많이 붙이면 웃기다는 뜻인데, 이상하게 한 개만 붙이면 다들 정색한다고 생각하더라"

"그래? 흠.. 나는 이해가 안되는데"

"아~ 몰라. 여하튼 주변 사람들이랑 카톡 잘 주고받으려면 'ㅋ' 두 개씩 붙이는 거 꼭 연습해라"

배운 내용을 연습하고자 앞에 있는 친구에게 'ㅋ'을 두 개 붙여 카톡을 몇 개 보내봤다. 친구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모범 답안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누구한테든 무조건 이렇게 보내라. 내가 딱 지켜볼 거다. 붙여서 보내는지."

"어휴.. 알겠다.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해볼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나름의 맞춤법 교육이 끝난 친구도 후련하다는 듯 나를 따라 함께 웃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이렇게 정착된 카톡 문화와 대화법에 대해서 이상하다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바탕 이야기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던 중 번뜩 궁금한 것이 떠올라 사물함에서 머리만 살짝 내민 상태로 그 친구에게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야 근데 'ㅎ'도 두 개 붙여야 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친구. 그리고 그다음 나오는 너무나도 당연한 대사.

"아!! 무조건 두 개 이상 붙이라고!!"

"크크크크~ 오케이~"


그 날 'ㅋ'으로 인해 시작된 인연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끔씩 밥을 먹거나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면 이 날의 이야기를 추억하곤 하는데, 가끔씩 내가 친구에게 장난을 치며 'ㅋ 선생'이라고 부르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한참을 웃다가 이내 감상에 젖어든다. 이 친구가 없었으면 나는 아마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세상의 흐름에 너무 역행하다보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또 이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00아~! 네가 가르쳐준 대로 나 이제 'ㅎ'이랑 'ㅋ'두 개 붙이는 거 습관들이고 있다. ㅋㅋ (2014년 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