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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an 25. 2021

'비움'에 대하여

[에세이]


 오늘도 어떤 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일은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며 쇼핑을 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옷들을 정리하며 의류수거함에 던져 넣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배고픔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밥을 먹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요리에 쓰이고 남은 쓰레기들을 모아 분리수거를 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런 이야기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삶이란 '채움'과 '비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움과 비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비우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엇을 가져야 하고 반대로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어있는 상태가 필요하다. 따라서 어느 한 개념만을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데, 보통 우리는 비우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채움으로써 느끼는 행복에 더 민감하고 익숙해져 있기에 가진다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것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비운다는 것에 그리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머지, 비운다는 개념을 그저 잃는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고민하는 비움에 대한 생각과, 색다른 시선을 나눠주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 쓰게 되는 두 손을 떠올려보자. 필요한 만큼 두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쥘 수는 있지만, 가득 쥐었다는 것은 한 편으로 다른 무언가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손이 비어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 붙잡을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비워낸다는 행위들을 단순히 부족함으로 보는 것이 아닌, 훗날 더 나은 것을 붙잡기 위한 준비자세라고 생각한다.


 비운다는 행위는 깃든 추억에 따라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결코 슬픈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워진 마음에 새롭게 채워질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으니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먼 길을 여행하려면 배낭이 가벼워야 하듯, 삶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는 비움을 통해서 삶을 더 가볍게 보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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