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친구가 남긴 이 짧은 댓글 하나가 나의 글쓰기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당시까지의 나는 글을 쓸 때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들이나 어떤 상황을 목격했을 때 드는 생각들을 우선 노트에다 적고, 그것을 풀어쓰면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졌는지, 또 이런 생각들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계속 분석하고 해석하며 나온 결과물들을 글로 만들어내는 것을 즐겼다. 어찌 보면 나만의 통찰력이 잘 드러나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지루하고 딱딱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 수많은 생각들과 근거들을 나열하다 보니 전체 글이 지나치게 길어 가시성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가끔 이렇게 쓴 글들을 페이스북에 올렸었는데, 나름 그 글을 읽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들이 돌아왔기에 나는 내가 쓰는 형태의 글이 가지는 단점과 개선해야 할 점이 어떤 것이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 그저 내일은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에 열중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함께 뛰어놀며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한 친구가 남긴 저 장난스러운 댓글 하나에 갑자기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멍해지면서 지금까지의 썼던 나의 글들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댓글을 남긴 친구는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댄스 스포츠를 전공하였기에 어찌 보면 글이 길고 어려웠던 것에 대한 푸념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저 말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의 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고민하며 내가 쓰려는 글이 결국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또 어렵지 않은 글이 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매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쉽게 쓰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나 새롭게 쓴 글은 이전과는 너무 분위기가 달랐기에 나는 내 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낯설어하며 펜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글을 쓰지 않은 시간이 오래되자 '글을 쓰지 않는 것도 꽤 여유로운 일이구나'라며 평범한 일상에 적응을 해갈 무렵, 고등학교 때 2년 간 같은 반을 하며 친분을 쌓았던 한 친구가 최근 자신이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많이 힘든데, 지금 무언가 힘이 될만한 문구 하나만 적어달라고 내게 의뢰를 하였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이제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져서, 친구에게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거절을 할까 고민을 하였으나 이별로 인해서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염려와 걱정, 그리고 나의 생각과 진심이 담긴 글귀 하나를 정성스레 써주었다.
너는 예쁘니까 사랑한다는 사람 말고 사랑하니까 예쁘다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
기존에 내가 써오던 글과는 길이나 분위기면에서 완전히 다른 글이었으나 나는 이 말이 진심으로 내가 그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또 연애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말이 적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글을 적게 되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주변의 반응과 지인들에게서 글귀를 인용해도 되겠느냐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그 날 하루는 '이게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는 얼떨떨함과 새로운 글에 대한 설렘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노트와 펜을 잡았다. 내가 쓰는 글이 타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전처럼 깊이 고민을 하긴 했으나, 이제는 쓰게 되는 문장과 단어들이 딱딱하지 않게 되는 것에 신경을 썼고 글에 담긴 내용은 어린아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드러나게끔 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런 글쓰기 방법을 반복하자 이 습관은 하나의 방식으로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글을 쓸 때면 이 방식을 가장 먼저 떠올리면서 글을 써나가고 있다.
지금도 가끔 글을 쓸 때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글이 너무 진중해지면 친구의 댓글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글을 너무 어렵게 쓰는 거 아니냐'라고 질문한다. 오늘날 이 친구는 그때 자신이 썼던 댓글이 내게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본인만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내게 말해준 그 친구에게 매번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