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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Mar 18. 2021

무엇을 하느냐 보다

[에세이]


 어제 먹은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욕구인지는 모르나 나는 무언가 더 나은 것을 해야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대한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이 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써주었으니 최소한 나랑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배려를 하게 되고,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집중을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먹을 것이나 환경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적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먹는 것과 관련하여 어린 시절부터 밥 한 공기에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소소한 식사에도 행복함을 느끼는 성격이었으며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그저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게 되었고, 여행이나 인근에 있는 도시로 산책을 가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타지에 왔으니 여기서 무언가를 꼭 해야지' 하는 욕심보다는 그냥 내가 이 도시로 무사히 올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는 성격인지라, 딱히 가리는 것도 없고 작은 행복도 크게 느끼는 이런 습관들 덕에 사람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이렇게 사람에게 집중하고 배려하는 습관들로 인해서 가끔은 지인들에게 "너는 뭔 말을 해도 그냥 다 좋다고 하니까 뭘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장난 섞인 말을 듣기도 하는데, 나는 이 말에 '이 사람은 아마 내가 싫은데도 억지로 좋다고 대답하는 것일까 봐 걱정하는 것이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내가 왜 이러는지를 설명 주어야 하나 고민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만나려 하지 않았을 테고, 이렇게 만났다는 건 당신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사실 무엇을 하든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행복하다.'라는 이 지루하고도 긴 문장을 꺼내기엔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서 뚜렷한 대답 대신 그냥 미소를 돌려주곤 한다.


 오늘도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면서 이와 같은 마음들을 속으로 곱씹는다. 역시나 내겐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또 함께 있을 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길을 걸어도 즐겁고, 맛없는 음식을 먹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지금껏 나와 만나고 있는 상대방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의 감정을 느껴주길 바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신에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다.'라는 나의 진심 어린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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