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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l 06. 2021

나의여행 계획세우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딜 잘 못 나가고 있지만, 여행을 좋아하던 당시에는 2주에 한 번씩 계획을 세워 먼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역사적인 사실들이 궁금해져서 남해 쪽을 가거나, 풍경이 멋진 곳을 보고 싶어서  있어서 강원도, 경기도를 돌기도 하고, 색다른 바다를 보고 싶어서 서해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황홀하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여행 초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멀리 떨어진 도시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가기 위해서 여행길에 오른 적이 있다. 적당한 여행 계획을 세워서 짧게 즐기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가벼운 여행. 하지만 복싱의 전설 타이슨이 그런 말을 했지 않았던가? '누구든지 처맞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라고. 나는 그날 여행의 매서움을 맛보았다. 생각해두었던 교통편은 모두 끊기거나 시간이 변경되었고, 여행지 주변의 모든 식당까지 이용할 수 없는 등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여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날은 두세 시간이나 걸리는 꾀나 먼 거리를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 걷기도 하고, 마침 핸드폰의 배터리가 닳아버린 탓에 지도를 볼 수 없어 인근 마을로 달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여행을 끝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다짐했다. 이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가자고.


 이 날 이후 나는 여행을 가기 전 이용하는 교통편의 정확한 시간(정류장에 도착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할 때의 소요), 해당 여행지에서 교통편의 연착되거나 증감했는지에 대한 여부. 정석적인 교통편 외에도 다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편의 종류. 그리고 여행지의 휴관이나 휴무일 등과 같은 예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찾아내어 계획을 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하여 5가지 정도의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각각의 종류와 상황은 다음과 같다.


A플랜 : 이동과 관람, 기타 계획까지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경우

 타 도시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의 버스 티켓 구매와 낯선 도시에서 이용하는 대중교통 등의 운행 시간이 계획과 일치하는 상황에서의 계획이다. 이에 더해 관광지까지의 이동 소요나 관람 시간도 얼추 예상한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게 되어 생각한 대로의 모든 일정을 수행하게 된다. A플랜을 생각할 때는 추가적으로 돌아볼 곳을 한 두 곳 정해두는데 이는 비교적 일정들이 일찍 끝나서 생기는 공백을 채우기 위함이다.

   

B플랜 : 목적지에 도착은 하였으나 교통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경우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은 정상적으로 되었으나 터미널에서 관광지로, 혹은 관광지에서 관광지로 이동할 때 생각했던 교통편이 연착되거나 취소되었을 때의 계획이다. 이때는 인근의 다른 정류장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는지, 또 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이나 기타 교통편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소요 시간과 비용을 예측해둔다. 추가적으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인근에서 이용 가능한 콜택시 번호 등도 확인해둔다.


 C플랜 :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촉박한 경우

 타 도시로 이동할 때의 차편이 늦어짐에 따라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해지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는 여타 자질구레한 여행지는 생략해두고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나 대표적인 여행지 1~2곳만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여행에 임한다. 이때 교통편의 경우 정석적인 루트보다는 가급적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택시를 우선으로 생각해서 비용을 계산하며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이 과할 경우 가장 멀리 이동해야 하는 여행지를 삭제하여, 적은 여행지를 집중해서 다니게 된다.


D플랜 :  가는 차편이나 오는 차편이 매진되어 다른 루트로 가야 할 경우

 D플랜은 세부적인 내용은 C와 유사하나 여행을 오고 갈 때 가장 중요한 시외교통을 이용할 수 없을 때를 상정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고 하는데 기차나 버스가 모두 매진된 경우, 원주나 대전을 거쳐서 부산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추가로 생각해두는 것이다. 보통은 이런 상황까지는 잘 생기지 않지만 때로 관광지에 사람이 몰려 차편이 일찍 매진되는 경우도 한 번씩 발생하는 터라 여유 있게 환승할 차편을 생각해둔다.


 E플랜 : 기상이변으로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

 지금껏 딱 두 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폭설로 인해서 원하는 역에 기차가 서지 않게 되거나 기상이변으로 인해서 시외로 이동하는 버스들이 모두 취소가 될 때 고려하는 계획이다. 이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대략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멍해진다. 사전에 공지가 된 것이 아니라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이 때는 이동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인근의 카페나 조용한 펍들을 찾아서 간다. E플랜의 경우는 '설마 이렇게 되기야 하겠어?'라는 의심을 가득 품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대충 몇 분 정도 고민을 한다.


 5가지의 플랜을 나열해보니 조금 복잡하게 사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각각의 플랜은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A플랜에서 하나씩 제외를 하면 되는 것이라 비교적 계획하기가 수월하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여행은 그리 복잡할 필요도 없고 많이 준비할 필요도 없는 터라 가급적 가볍게 떠나면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복잡한 생각들을 비우러 여행을 가는 것인데, 이 여행 때문에 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니까.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완벽하게 내가 그곳에 다다르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놓치고 실수하는 순간들을 상상해도 즐겁고 두근거린다. 이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항상 계획을 세우면서 되새기는 마음이 있다. '치밀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실행할 용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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