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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Jun 16. 2021

휴가를 쓸 때의 마음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휴가'란 행복이자 불안이다. 그 이유는 휴가라는 것 자체가 업무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연장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해하겠지만 휴가를 언제 쓸지 정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부서에 주요 업무가 없는 날이어야 하고, 자신이 꼭 처리해야 하는 업무와 겹치지 않는 날이어야 하며, 조금 더 까탈스러운 곳은 자신의 상급자와 겹치지 않는 날이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휴가가 있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휴가 사용을 하지 않거나 지인들과의 약속을 미뤄두곤 한다.


 또 다른 불안 요소를 생각해보자면 휴가가 끝난 이후에 찾아오는 부담감이 될 수 있겠다. 어떻게 용기를 내어서 휴가를 확정했을 때는, 휴가가 다가오는 날 동안 잠시 행복에 젖는다. 어디로 놀러를 가야 할지, 또 누구를 만나야 할지. 온전히 나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잠시 동안의 주말을 제외하고는 맛볼 수 없기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막상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출근을 하기 전날 짜증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이유는 다음날 과연 어떤 업무들이 쌓여있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고, 즐거웠던 어제와는 대비되는 내일이 자신을 낙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찾아온 출근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으면 아니나 다를까 상상하던 일이 펼쳐져 있다. 책상 위에는 내가 확인해서 상신해야 하는 서류들이 뭉텅이로 놓여 있으며, 컴퓨터를 켜보면 사내 메신저에는 휴가기간 동안 보내진 읽지 않은 메시지 수십 개가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노랗게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서류와 메시지들에 담긴 업무들을 중요도별로 정리하다 보면 어느샌가 마음에 '휴가를 가지 말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휴가를 쓸 때마다 계속 반복되어 사람의 마음을 좀먹게 된다.


 분명 쉬었다 오라는 뜻에서 보장된 '휴가'가 우리에게 제대로 된 휴식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매번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휴가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휴가를 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찬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습처럼 쳇바퀴를 돌듯 피곤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휴식이 부디 더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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