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by 그리다

지난 11월, 나는 횟수로 100회째의 헌혈을 완료했다. 30회 50회 때도 이와 비슷하게 감사장을 받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100회째에도 또 받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헌혈을 하는 건 인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뭔가 의미 있는 일로 시간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에 헌혈을 하러 가게 되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 습관처럼 매주 주말이면 헌혈의 집으로 계속 가게 된 것뿐이다.


처음 헌혈을 했던 것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문학을 가르쳐 주시던 은사님의 덕분이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장교를 전역하신 후 약 20여 년간 교사로서 직무를 수행하신 매우 호탕한 성격의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장교의 길로 인도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이런 선생님의 호탕함은 숙제를 안 해온 학생들에게 벌을 주실 때도 적용되었다. 손을 만두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탈리아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의미의 제스처와 비슷한 손 모양을 만들어서 새가 부리로 쪼듯 이마를 딱 때리셨는데, 이것이 참 신기한 게 '똑!' 소리는 엄청 크게 나는데도 이상하게 아프지가 않았다. 이 마법 같은 타격법은 학급 친구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끼리 모여 선생님의 자세를 연구할 정도였다. 여하튼 이 선생님께서는 혼을 내시기 전 '시간 날 때 나랑 헌혈을 하러 가면 혼내는 강도를 낮춰주겠다'라고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는데 이 꾐에 빠져 여러 친구들이 헌혈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육신의 고통을 피하고자 헌혈을 선택했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했던 주말 나는 처음으로 헌혈을 체험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헌혈 바늘이 아프기도 하고, 느낌이 이상한 경우도 있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혼나는 것이 낫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헌혈을 하면 따라오는 혜택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몇 가지는 헌혈을 하려면 헌혈의 집이 있는 인근의 도시 '김해'로 가야 했기에 선생님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과 헌혈이 끝나고 나면 맛집에 들러 선생님께서 밥을 사주셨다는 점. 그리고 헌혈을 하는 시간 동안은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던 지루한 주말 자율학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 첫 헌혈 경험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어릴 적 예방접종을 통해 바늘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많이 아플 것 같아서 바늘을 찌를 때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아프다기 보단 그냥 누가 살짝 꼬집은듯한 느낌만 나서 속으로 '어 괜찮은데?'라고 자신감이 올라왔다. 또 지난 몇 년간 선생님께서 선배님들을 데리고 헌혈의 집에 오셨던 터라 헌혈이 끝나면 간호사 선생님께서 과자를 하나씩 더 챙겨주셨는데 이 또한 헌혈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도 만날 때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첫 헌혈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끝나고 나니 이후부터는 헌혈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서 이후에는 선생님께서 헌혈하러 갈 사람을 모집할 때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참석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까지는 헌혈을 하면 숙제를 안 해가도 덜 혼난다는 것과 먹을 게 많이 생긴다는 것에 더 행복해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어진 대학시절. 헌혈을 하는 일에 평탄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주말에 미리 예약을 하고 헌혈을 한 것이 약 30회가 되어갈 무렵 나에게 한 달간의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 발생한다. 보통은 헌혈 바늘을 찌르고 난 후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그 위에 반창고를 덮어 주시는데 나는 그 반창고 덕분에 바늘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동안 계속 마인드 컨트롤로 '그냥 누가 살짝 꼬집은 거다.'라고 되뇌며 헌혈을 하고 있었다. 그런 습관이 반복되던 어느 날 똑같이 헌혈 바늘이 들어가고 난 후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헌혈 중인 팔로 시선을 내렸는데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그날은 간호사 선생님께서 깜빡하셨는지 반창고를 미리 붙여놓지 않으셨는데 바늘이 팔에 꽂혀있는 것을 눈으로 보자, 머릿속에 '바늘이다, 아픈 것이다'하는 느낌이 계속 울리면서 팔과 얼굴에 쥐가 났다. 바늘에서 급히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바늘에 찔린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길었던 40분이 지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헌혈의 집을 나왔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멀미를 했다. 시선은 술에 취한 듯 흔들리고 머릿속에는 계속 바늘의 모습이 기억나서 아마 그런 공포심? 쇼크? 그런 것 때문에 멀미를 하지 않았나 싶다. 이후 약 이틀 동안은 현기증이 심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약 2주 동안은 계속 그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나서 명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배가 고프니 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먹게 되고, 점점 건강해지다 보니 또 습관에 의해 나는 헌혈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다시 헌혈의 집에 갔을 때의 마음은 '아 몰라. 뭐 죽기야 하겠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 덕분에 마음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이어진 헌혈은 200회를 향해 달려 나가는 중이다. 헌혈을 하면 뭐가 좋은 것일까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지만, 그동안 헌혈을 하면서 모은 헌혈증서로 수술하시는 친구의 부모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후배,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친척 어르신에게 도움을 드렸으니 무언가 의미 없는 일을 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교에서는 나 자신도 모르게 하는 선행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최고로 친다던데, 선행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계속 헌혈을 하고 있는 나는 앞으로 복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떠올렸다는 사실 때문에 복을 받기는 좀 그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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