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까, 모른 척할수 있다.

by 그리다

'한 가지 단어에 대해서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더 많이 이해한 사람이다.' 어디서 보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누군가가 했던 말이고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말이다. 이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는 이유는 '모른 척'이라는 이번 주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직관력과 통찰력, 그리고 눈치가 빠르다는 점을 특성으로 꼽는다. 그리고 이런 통찰을 통해서 상대방이 내뱉는 거짓이나 가식 등을 쉽게 간파하게 되지만 정말 바보처럼 그냥 모른 척하며 산다. 어찌 보면 참 신기하지만 이상해 보이는 이 '통찰'. 우리는 이런 통찰을 왜 하게 된 것이고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카멜레온처럼 외부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과 조화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심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얼추 알듯이 사람은 본디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거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런 당연한 감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높이기 위해 꺼내는 허세나 거짓말 등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과시욕이나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언어는 아킬레스건과 같이, 꾸짖거나 잘못 건드리면 그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나아가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어긋난 것이 아니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식으로 넘어가 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거짓을 눈치채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통찰력'은 어떻게 발휘하는 것일까? 독심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통찰력은 바로 사람을 오래 본다는 특성과 그에 따른 관찰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 짧게 서술한 것이 있듯이, 사람을 사귈 때 오래 볼 사람이 아니라 판단되면 시간을 내지 않는다. 반대로 오래 볼 사람이라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 사람의 습관이나 행동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입력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상대방'이라는 폴더가 생성되게 되고 이 안에 서서히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 선호하는 것과 선호하지 않는 것, 습관 등과 같은 것이 파일처럼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 상대방의 행동 패턴이나 심리 등이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긴장하고 불안하면 어떻게 시선처리를 하는지, 행복할 때는 어조나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떻게 되는지 등, 마음이 표현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심벌을 보면서 그 너머의 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카페에서 누군가를 본다면 상대방이 시키는 메뉴, 컵을 잡을 때의 손가락 형태, 컵이 테이블에 놓일 때 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말을 할 때의 자세 같은 상대방은 알지 못하는 일상 습관과 부수적인 요소들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한다. 그 이후의 행동이나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은 쉽다. 상대방이 우울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냥 툭 던지듯 '혹시 지금 기분 나쁜 일이 있어?'하고 물어보면 상대방은 봇물 터지듯 오늘 하루 자신이 겪은 일과 감정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해주니까.


일부러 속아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속는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다. 워낙 사람을 좁고 깊게 사귀는 유형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대충 머릿속에 있다. 지나치게 문란하거나 도덕적으로 어긋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만나지를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만나는 사람이라면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이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속아줘도 괜찮을 것 같다.'라는 판단이 들어 속아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속아주는 사람의 특징은 명확하며 나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 거짓말이나 가식을 떠는 목적이 단순히 이 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한다는 점과 그런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내 사람들에게 속아주고, 져주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대개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해준다. 정말 감사하고 한 편으로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 자신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을 관찰하기 위해 나를 낮추다 보니 자연스레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게 되고, 상대방의 언어에 담긴 목적을 파악하여 적절한 대답을 돌려주게 되니,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나를 긍정적인 인물로 여겨준다는 것이다. 이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말에 속아주는 사람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거나 바보 같다고 놀리지 말자는 것. 속아준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을 믿고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라는 것.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